[역사인물분석]고려사를 통해 본 서희의 협상력에 대한 분석
- 최초 등록일
- 2006.01.06
- 최종 저작일
- 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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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거란과의 외교담판에서 당당하게 승리를 얻은
최고의 협상가 서희.
`고려사` 열전에 나타난 내용을 바탕으로
그의 협상력에 대한 분석을 해보았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서희의 협상능력에 대한 분석
Ⅲ. 맺음말
본문내용
서희는 고려 초기를 대표하는 정치가이자 외교가로서 큰 명성을 떨친 인물이다. 그는 강직하고 올곧은 성격으로 임금이 잘못할 때마다 간언을 하여 잘못을 바로 잡은 충신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서희가 명성을 얻게 된 것은 거란 침입 당시 뛰어난 외교술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했기 때문이다.
당시 고려는 태조 때부터 북중국을 지배하여 국경을 맞대고 있는 거란을 배제하고 중, 남부를 지배해 온 후진,후주와 친교를 맺어왔다. 그러나 북쪽은 여진과 거란에 가로막혀 있어 해상으로 교류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보니 외교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거란은 끊임없이 사신을 파견하여 국교를 맺을 것을 요구해 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서희는 바다 건너 송나라에 가서 단절된 외교를 회복하고, 이를 빌미삼아 거란이 쳐들어오자 적장과의 외교 담판을 통해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 압록강 동쪽의 강동 6주까지 얻어냄으로써 역사에 길이 남을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Ⅱ. 서희의 협상능력에 대한 분석
① 말솜씨와 예의
광종 23년에 사신으로 송나라에 갔었다. 당시 고려에서는 송나라와 10여 년 동안이나 왕래가 없다가 서희가 사신으로 갔는데 그의 행동이 절도 있고 예법에 적합하였으므로 송나라 태조가 가상히 여기어 검교 병부 상사(檢校兵部尙書) 벼슬을 주었다.
광종 23년(972), 왕명을 받아 송나라에 파견된 서희는 최업 ․ 강례 ․ 유은 등과 함께 뱃길을 통해 송나라로 건너갔다. 북쪽으로는 여진과 거란에 가로막혀 있어 육로로는 송나라에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송 태조 조광윤은 어렵게 건너온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기는커녕 오히려 탐탁치 않게 여겼다. 그것은 송나라가 건국한 지 10년이 넘도록 아무런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고려 조정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게다가 고려가 당시 송나라와 중원을 놓고 대립하고 있던 거란과 우호 관계를 맺고 있다고 여겼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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