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김시습-『금오신화(金鰲新話)』에 대한 자료입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작가 김시습(1435-1493)
2. 개별 작품
1)「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2)「이생규장전(李生窺牆傳)」
3)「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4)「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5)「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3. 의의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금오신화(金鰲新話)』는 조선 전기의 문인이자, 사상가인 매월당 김시습이 지은 단편소설집으로, 최초의 한문소설로 널리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이생규장전」, 「만복사 저포기」,「남염부주지」, 「취유부벽정기」,「용궁부연록」의 총 5편으로 구성된 『금오신화』는 문학사적인 가치문제, 작품 내적인 성취도 등 이미 다방면으로 널리 연구와 평가가 이루어졌다. 이에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기보다는, 작가 김시습과 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산문문학의 도약을 이룬 금오신화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Ⅱ. 본론
1. 작가 김시습(1435-1493)
김시습은 세종 17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종 24년 59세로 생애를 마쳤다.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청한자(淸寒子)·벽산(碧山), 법호는 설잠(雪岑), 시호는 청간(淸簡)으로 생육신(生六臣) 중의 한 사람이었다. 김시습은 서울 성균관 부근에 있던 사저(私邸)에서 출생하였으며, 신동․신재(神才)로 이름이 높았고, 열다섯에 모친을 잃게 된다.
1455년, 삼각산 중흥사(重興寺)에서 공부하다가 수양대군이 단종을 내몰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통분하여, 책을 태워버리고 중이 되어 이름을 ‘설잠’이라 하고 전국으로 방랑의 길을 떠났다. 북으로 안시향령(安市香嶺), 동으로 금강산과 오대산, 남으로 다도해(多島海)에 이르기까지 9년간을 방랑하면서 『탕유관서록(宕遊關西錄)』,『탕유관동록(宕遊關東錄)』,『탕유호남록(宕遊湖南錄)』등을 정리하여 그 후지(後志)를 썼다. 그리고 1463년(세조 9) 효령대군(孝寧大君)의 권유로 잠시 세조의 불경언해(佛經諺解) 사업을 도와 내불당(內佛堂)에서 교정 일을 보았으나 1465년(세조 11) 다시 경주 남산에 금오산실(金鰲山室)을 짓고 입산하였다. 2년 후 효령대군의 청으로 잠깐 원각사(圓覺寺) 낙성회에 참가한 일이 있으나 누차 세조의 소명(召命)을 받고도 거절하여, 금오산실에서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지었고, 『산거백영(山居百詠)』(1468)을 썼다. 이곳에서 6~7년을 보낸 후 다시 상경하여 성동(城東)에서 농사를 지으며 『산거백영 후지』(1476)를 썼으며, 1481년(성종 12)에 환속(還俗), 안씨(安氏)를 아내로 삼기도 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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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기, 「金鰲新話論」, 『부산한문학연구』제6집, 부산한문학회,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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