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군사]북한의 당-군 관계 형성의 배경과 그 변화
- 최초 등록일
- 2005.12.22
- 최종 저작일
- 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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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북한학 수업 레포트입니다.
목차
1. 당-군의 분리와 군에 대한 당의 내적 통제(1945 - 1950)
2. 당의 군대 : 당과 군의 조직적 통합(1950 - 1958)
3. 인민군 내 통제체계의 완결(1958 - 1972)
4. 조선인민군 내 후계체제 구축과 완성(1973 - 1990)
5. 당 헤게모니 약화와 선군정치의 등장(1990년 이후)
본문내용
조선인민군의 정치적 역할을 규정하는 요인의 하나는 역사적 배경이다. 사회주의혁명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에 따라 사회주의정권 수립 이후 군대의 정치적 역할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북한의 경우 동유럽처럼 소련군의 점령에 의해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되었고 무력조직이 정권수립 과정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지만 북한은 동유럽형이라기 보다는 중국, 쿠바형에 가깝다. 그것은 인민군을 항일무장투쟁의 계승자로 둔갑시키면서 - 물론 이것은 김일성의 정치적인 의도에 의거해 만들어진 허구에 불과하다. - 정권 형성에 결정적 기여를 한 것으로 재규정 시켰기 때문이다. 해방직후 북한 내 무력조직 장악에 집중한 김일성은 일찍부터 인민군의 통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김일성은 당 지도부에 대한 군지도자의 도전을 극복하면서 군대에 대한 통제를 강화, 군대를 이념적으로나 조직적으로 당의 군대로 통합하는 데 성공했다. 김일성 만주파에 의한 당 장악 → 김일성 유일지도체제 →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과정을 통해 군대가 당의 지배적 파벌 혹은 당 지도부의 도구로 정련되는 과정에 대해 살펴보자.
1. 당-군의 분리와 군에 대한 당의 내적 통제(1945 - 1950)
1) 당-군의 분리 : 통일전선과 인민의 군대
김일성은 귀국 직후 소련의 후원 아래 군대와 보안대 조직에 주력하였다. 각 도 인민위원회에 보안대라는 단일 치안기구를 설치하고 1945년 11월에는 5도 행정국에 보안대를 관할하는 보안국도 조직했다. 보안대가 설치되면서 보안 및 군사 간부 양성기관 잇달아 창립되었는데 그 내용을 보면. 1946년 2월에는 평양학원, 1946년 7월에는 군 초급간부 양성기관인 중앙보안간부학교, 1946년 8월에는 보안간부 훈련소가 새로 설치되었다. 보안간부 훈련소는 훈련소라는 명칭과 달리 실제로는 정규군과 같은 조직체계를 갖추었는데 이것은 보안간부 훈련대대부를 통해 알 수 있다. 대대부는 군사력 건설과 유관한 부대들을 통합 지휘하기 위한 것으로, 군대의 면모를 갖춘 실질적인 군사령부였다. 또 1947년 5월에는 전 장병에게 계급장을 수여하고 이를 계기로 조선인민집단군을 공식 표방하였으며 1948년 2월 8일에는 정식으로 조선인민군 창립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북조선노동당에는 군대를 담당하는 조직이나 인물이 없었다. 북조선노동당은 군대 내에서 여러 정당중의 하나였으며, 군대에는 당 조직이 존재하지 않았고, 어떤 특정당의 영향을 인정하지도 않았다. 적어도 외형상으로 군은 당으로부터 자율성을 보장받은 것처럼 보였고, 당과 군대는 공식적, 조직적 유대없이 각각 독립적으로 창설되고 발전해 나갔다.
참고 자료
이대근, 2003,『북한 군부는 왜 쿠데타를 하지 않나』, 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