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백암 박은식은 유학자요, 사학자요, 사상가요, 언론인이요, 교육가요, 독립운동가로서 한말과 일제시대에 활동하였다. 그의 활동 시기는 1898년부터 1925년 까지였다.
박은식은 정통주자학자로서 개화를 부정적인 것이라 단정하여 쇄국을 주장하고 신사상과 종교를 이단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독립협회의 활동과 새로운 사상을 접하게 되어 개화사상가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박은식은 일제와 열강들의 침략이 시작되는 혼란한 상황과 사상의 범람속에서 주자학의 모순점을 자각하고 유교구신론을 주장하는 한편, 일제의 국권침략을 폭로하였다. 한일합방이후에는 중국으로 망명하여 일제에 대항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고, 또한 국민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통하여 국혼론적 역사의식을 성립시켰다.
이 발표문에서는 박은식의 생애와 시대적 상황을 살펴본 뒤, 그의 역사인식과 사학사적 의의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Ⅱ. 시대적 배경과 생애
1. 시대적 배경
1860년을 전후하여 조선사회는 안으로는 60여년간의 세도정치로 양반사회는 큰 혼란을 겪게 되었으며 삼정이 문란해져 농촌사회는 큰 고통을 받고 부패한 세도정치에 반발하는 민란이 자주 일어났으며, 밖으로는 서양세력이 침략의 위협을 주면서 다가와 큰 어려움을 맞게 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집권한 흥선대원군은 대내적으로 세도정치의 잘못을 바로 잡고 정치를 안정시키기 위하여 갖가지 개혁을 단행하였으며, 대외적으로는 접근해 오는 서양열강과 일본과의 통상을 거절하며 쇄국정책으로 맞섰다.
그러나, 개혁정치의 성과는 컸지만 그에 따르는 폐단도 나타나 대원군은 물러나고 민씨세력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이때 조선의 대외정책에는 쇄국에서 개항으로의 큰 변화가 일어났다.
즉, 1876년 강화도 조약을 계기로 문호개방정책을 추구하였으며, 이와 아울러 조선은 서구의 근대화된 문명을 도입하였고, 일본을 비롯한 서구 열강의 정치, 경제, 군사적인 침략을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문호개방 이후의 조선은 민비와 대원군간의 갈등, 개화론과 척사론의 대립, 그리고 열강의 침략 등으로 사회적 혼란이 계속되는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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