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A+자료 입니다. 2주간 조사해서 정말 열심히 쓴 자료예요^^
많은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道詵國師와 風水地理
1. 道詵國師의 生涯
2. 時代的 背景
3. 道詵과 風水地理
Ⅲ. 道詵國師와 禪宗의 成立
1. 禪宗 成立의 歷史的 考察
2. 나말여초(羅末麗初) 禪宗의 傳來
Ⅳ. 道詵國師와 寺刹 - 光陽 白鷄山〈玉龍寺〉를 중심으로
1. 《新增東國輿地勝覽》에 소개된 道詵國師와 관련된 寺刹
2. 白鷄山 〈玉龍寺〉
3. 화순, 〈雲住寺〉
4. 영암 月出山, 〈道岬寺〉
5. 강진, 〈無爲寺〉
Ⅴ. 맺음말
본문내용
道詵國師는 신라 말기에 새로 전래되어 당시 불교계에 새로운 분위기를 일으키고 있던 禪宗 계통의 스님이다. 그는 先聞九山 중의 하나였던 동리산 개산조 혜철(惠徹)스님의 직계 제자로, 혜철의 인가를 받아 전남 광양에 있던 〈玉龍寺〉에서 독자적인 선문을 개설하였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도참승으로 알려져 있어 일반적으로 선승이라기보다는 풍수지리의 대가라거나 우리나라 도참사상의 비조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후대인들이 덧붙이거나 꾸며서 쓴 신기한 전설로 말미암아 神僧 또는 術師로까지 취급도기도 하였다.
道詵國師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근본적으로 그의 사상과 모습을 정확하게 전해주는 문헌이 없었다는 점에 그 중요한 원인이 있다. 단편적이고 부정확한 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비․전기․실록 등의 기록에서 道詵國師의 사상적인 바탕이 마치 당나라의 일행(一行)법사에게서 직접적으로 배워 온 것처럼 전해 주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道詵國師를 도참승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고려 태조는 “조선이 占定한 곳 외에 함부로 사원을 세운다면 곧 地德이 손상되어 祚業이 영원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유훈을 내림으로써, 고려에 있어 道詵國師의 위치가 확고해졌음은 물론 도참승으로서의 道詵國師에 대한 관점도 역시 고정화되어 버렸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의 일부 국내외 학자들까지도 인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늘날 남아 있는 道詵國師에 관한 자료는 상당한 양이 전해지고 있으나 대부분의 후대인들에 의해 많이 꾸며진 것이어서 사적인 자료로서의 가치는 적은 것들이다.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을 들자면 고려 태조《訓要十條》, 고려 인종 때 崔應淸이 찬술한 《玉龍寺玉師道詵加封先覺國師敎書及官誥》, 고려 의종 때 崔惟淸이 찬술한 《白鷄山玉龍寺贈諡先覺國師碑銘竝序》와 金寬毅가 편집한 《編年通錄》이 있다. 그리고 고려 충숙왕 때 閔漬가 찬술한 《本朝編年綱目》과 《龍飛御天歌》, 《東國與地勝覽》, 《智異山華嚴寺事蹟》 외에 조선총독부에서 편집한 《朝鮮寺刹史料》에 여러 가지 기록들이 수록되어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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