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백제 웅진, 사비시대의 귀족세력
- 최초 등록일
- 2005.11.26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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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백제의 웅진도읍기, 사비도읍기 시기의 귀족세력의 동향에 관한 레포트
목차
Ⅰ. 서론
Ⅱ. 웅진시대의 귀족세력
Ⅲ. 사비시대의 귀족세력
Ⅳ.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百濟의 熊津遷都는 高句麗의 南下政策에 의하여 도읍 漢城이 함락하고 개로왕(蓋鹵王)이 죽음을 당한 뒤에 어쩔 수 없이 행해진 것이었다. 즉 百濟 내부의 사회적 발전에 따르는 스스로의 要求에 의한 것이 아니라, 밖으로부터 强要된 것이었다. 따라서 이 遷都 자체가 곧 百濟社會의 일정한 發展을 말하여 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熊津遷都가 百濟史의 큰 轉換을 의미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고, 다음 泗沘時代 百濟의 도약을 위한 발판을 구축하던 시대이기도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百濟史上 熊眞時代의 歷史的 變化 過政은 여러면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漢城에서 古代國家를 이룩하였던 百濟의 政治'經濟'文化'중심지는 바로 漢江流域의 漢城이었다. 이러한 漢城이 高句麗에 의해 陷落된 것은 百濟로서는 결정적인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로 야기된 문제는 실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정도의 진통이 뒤따랐다고 판단된다. 우선 기존에 형성되어있던 貴族社會의 혼란으로 인한 政局의 混亂이 極甚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中央의 貴族社會의 혼란은 바로 地方의 勢力들에게도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중심지도 漢江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경제기반이 錦江유역인 熊津으로 遷都를 단행하게 됨으로서 錦江圈으로 이동하였을 것이다. 漢城時代와 熊津時代의 역사적인 변화는 이외에도 많이 있지만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바로 漢城地方에 위치하고 있는 王族들의 墓制와 熊津遷都 이후에 築造된 王族들의 墓制가 판이하게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즉 漢城地方에 위치하고 있는 王族들의 무덤은 高句麗繼統의 積石塚들이지만 熊津時代의 형태는 성격이 다른 橫穴式의 石室 塼室墳인 것이다. 결국 百濟의 熊津遷都는 기존의 百濟史에 하나의 획을 그을 수 있는 중대사였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變革期인 熊津時代에 이루어진 많은 變化들 가운데서 여기에서는 주로 貴族勢力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참고 자료
井上秀雄, 「百濟貴族에 대하여」, <백제연구>, 特輯號, 忠南大學校 博物館, 1982 .
梁起錫, 「웅진천도와 중흥」,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 백제], <한국사> 6, 국사편찬위원회, 1996.
金周成, 「사비천도와 지배체제의 재편」,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 백제], <한국사> 6, 국사편찬위원회,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