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라는 책과 더불어 과거 신화속의 `마녀`부터
유태인학살, 빨갱이 죽이기, 현대의 개똥녀 까지 대를 내려오는 마녀사냥에 대한 의미를 알아보는글.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마녀의 발생
2) 마녀사냥의 실태와 궁극적 원인
3) 20C : 마녀사냥의 의미 발전
4) 현대 우리나라의 더욱 다양한 마녀사냥
Ⅲ. 결 론
본문내용
그와 반대로 미셸 푸코의 ‘미시권력론’에 따르면 현대사회의 권력은 국가가 갖고 있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곳곳에 이미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가정, 법원, 공장, 실험실, 대학, 성관계 등의 공간 속에서 미시권력- 국가 권력이 아닌 -이 작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권력이 사회화 과정 속에서 스스로 체화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과거의 국가권력과 같이 명확히 드러나는 권력의 주체는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즉 타도해야 할 명확한 대상이 사라진 셈이다. 그 예로 사이버 공간에서 일어나는 마녀사냥은 권력을 갖고 있는 기득권자들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을 사용하는 평범한 네티즌들이 주도할 수 있다는 것이고, 왕따를 당했던 아이가 왕따를 시킬 수도 있고, 왕따를 시켰던 아이가 오히려 왕따를 당할 수도 있는 것처럼 굳이 인터넷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지금 현재 많은 사람들이 사이버 인민재판을 우려하는 이유는 무차별적인 ‘인권’공격이고 공격의 수위도 날마다 위험해져 비난받는 사람들의 삶을 해치는 수준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익명성’의 보장을 바탕으로 거침없이 악성 리플을 다는 네티즌들을 보고 있을 때면 한사람을 반찬 삼아 그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것처럼 생각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학창시절 도덕, 윤리시간에 배웠던 현대사회의 폐해가 아닐까. 현대인들은 무수히 많은 경쟁 관계 속에서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살아간다. 자신이 올라가려면 자신보다 위에 있는 사람을 무너뜨려야 하는 사회 속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매일을 고되게 살아야 하는 사회 속에서, 개똥녀와 같이 자신이 비난할 수 있는 건수가 생기면 그 속에서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다.
그러면, 비난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정말로 그렇게나 많은, 강도 높은 비난을 받아야 할 필요성이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의 비난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인권을 무시할 정도의 비난은 옳지않다. 인간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새겨듣고, 사람들은 광분하지 말아야 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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