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사]한국과 일본의 차문화의 비교
- 최초 등록일
- 2005.11.13
- 최종 저작일
- 2005.11
- 10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고려대학교 교양수업인 생활의 역사 시간에 작성한 레포트입니다.
글자크기10 문단간격160이며 직접작성하였습니다.
성적은 A+이며 9페이지 여백없이 빡빡합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차의 기원 및 종류
2. 일본 다도의 역사
3. 일본 다도의 정신
4. 한국 차문화의 역사
5. 한국 다도의 정신
6. 한국의 유명한 다인들
7. 한국 차문화의 특징
8. 한국과 일본의 다기
Ⅲ. 결론
본문내용
한국의 차문화는 고조선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추측된다. 한반도에는 단군시대부터 토종차인 백산차(白山茶)의 존재 가능성이 있었지만, 삼국사기에 고구려의 지방 이름으로 ‘구다국’이 있는 것으로 보아 차가 귀중했던 것 같다.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는 선덕왕(재위 632-646) 때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덧붙이기를 흥덕왕 3년(828)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대렴(大廉)이 귀국길에 차나무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에 심으니, 이 때부터 차 마시는 풍속이 성행했다 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차는 한반도의 경우 적어도 신라에서는 7세기에 등장해 9세기에 차 마시는 풍습이 유행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다도정신은 신라시대에 형성되었으며, 그 기원은 원효대사의 화정사상을 기조로 한, 화랑도의 화백사상에서 엿볼 수 있다. 서기 199년부터 차례를 거행하였지만, 신라시대에 이르러서야 다예가 정착되었다. 또한 야외중심의 음다(飮茶)풍도 백제의 승려 행기가 688년에 일본 도다이지 근처에 차나무를 심었으므로, 백제인들도 일찍이 음다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신라의 다예를 계승한 고려의 다예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융성하였다. 즉 고려시대는 차문화의 전성기였다. 태조 왕건(王健,877-943)이 후삼국 통일을 눈앞에 두고 각지의 군민과 승려에게 곡식, 옷감과 함께 차를 내린 사실은, 이미 10세기 초기에 차가 전국적으로 유행하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고려 왕조는 궁궐 안에 다방(茶房)을 두어 팔관회(八關會)와 연등회(燃燈會),세시행사(歲時行事)와 종묘제사(宗廟祭祀)등 크고 작은 궁중행사에 차를 만들어 올렸다. 큰 도시에는 다점 (茶店)이 있어 자유롭게 차를 사 마실 수도 있었으면, 차 맛을 비교하여 품평하는 명전(茗戰)이 승려들 사이에서 유행하기도 하였다.
고려 전기의 차 문화는 국가행사를 중심으로 왕가와 귀족 관료, 신분 높은 승려들이 주축이 되어 의례적이고 고급스러운 경향이 강했으나, 후기로 가면서 문인 사대부와 일반승려 등의 지식인층에 의해 소박하고 간결한 경향으로 바뀌어 갔다.
성종이 풀매로 손수 말차를 제조했을 만큼, 왕실과 사원에서 차를 중시하고 즐겨 마셨다.
참고 자료
직접작성 및 각종 연구자료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