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30년대의 상황.
2. 30년대의 화풍들의 성향.
① 아카데미 미술
② 인상주의
③ 30년대 후기 모더니즘
* 프로레타리아 미술과 향토색 논쟁.
* 향토색을 바라보는 현대 평론가들의 2가지 견해
3. 1940년대 미술.
본문내용
1. 1930년대의 상황.
우리나라 현대미술 초기에 있어서의 본격적인 미술이 전개된 시기로 이 시기에 많은 유학생들로 이뤄진 작가들이 활동하는등 질적 양적으로 팽창되던 시기였다.
이 당시 서양화가들의 중요한 데뷔 절차는 鮮展이었다. 협전이 친목중심의 그룹전이었던데비해 선전은 엄연한 시상제도가 있었고, 무엇보다 당시의 지배층(日帝)의 엄호와 지원하에 있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매력적이고 무시못할 등단 절차였던 셈이다.
cf. 하지만 선전의 반대편에 자리한 협전의 경우도, 기실 투철한 민족주의나 반일정서에 기반했다고 할 수는 없는것이, 해방이후 고희동이 이끄는 [ 조선 미술협회 ]는 이승만정권의 비호하에 화단을 정권을 장악하다시피 하기때문이다. 문제는 고희동이 이끈 서화협회가 바로 [조선 미술협회]의 전신이라는 것이다. 또, 서화협회는 문화주의, 개량주의를 견지하긴 했다지만, 일제체제하에서 구조적 한계속에서 안일한 전통고수나 신미술문화 보급과 같은 그들의 기치는 당대의 역사적 인식에 기반한 운동은 아니었다고 봐야 옳다. 도리어 이러한 관료중심의 미술이나, 아카데미즘의 관념주의(형식주의)의 반대편에는 30년대 중반 자취를 감추고 만, 'KAPF'를 고려해야 한다. 이는 뒤에서 향토색논의와 더불어 거론될 것이다.
2. 30년대의 화풍들의 성향.
① 아카데미 미술.(선전을 중심으로 한 인물화와 누드)
20년대초부터 기반을 다진, 선전의 아카데미즘은 안일한 소재주의, 판에 박힌 양식의 복재라는 폐악을 가져온다. 이들이 지향하는 소재는 보통 소위, '여인좌상'으로 대표되는 인물화와 누드이며, 이같은 틀에 박힌 소재를 통해 그나마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라고 한다면, 입체감에 대한 지향과 3차원적 표현, 인물에 대한 사실적 접근(표현)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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