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암 이현보에 대한 레포트입니다. 이현보의 생애와 함께 `농암가`, `어부가`, `어부단가` 등 그의 잘 알려진 주요 작품과 `생일가`, `효빈가` 등의 국문시가, 그리고 `명농당시`, `분어행` 등의 한시도 함께 다루었습니다. 이현보의 작품세계에 대해 알고자 하는 분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현보의 생애와 관련하여 폭넓게 작품을 다루려고 하였습니다.
농암 이현보에 대한 레포트입니다. 이현보의 생애와 함께 `농암가`, `어부가`, `어부단가` 등 그의 잘 알려진 주요 작품과 `생일가`, `효빈가` 등의 국문시가, 그리고 `명농당시`, `분어행` 등의 한시도 함께 다루었습니다. 이현보의 작품세계에 대해 알고자 하는 분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현보의 생애와 관련하여 폭넓게 작품을 다루려고 하였습니다.
1. 서론
이현보(李賢輔, 1467,세조13 ~ 1555,명종10)는 조선 초기에 태어나서 조선 중기까지 살았던 조선시대의 문신(文臣)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어부가(漁父歌)」와 「농암가(聾巖歌)」의 작자이며, 영남가단의 창시자이다. 이현보의 생애는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과거에 합격을 하였지만 연산군에게 미움을 받아 거의 죽음의 문턱을 넘을 뻔 했던 39세까지를 제 1기라고 한다면, 중종반정으로 유배에서 풀려 나 관직생활에 복귀한 후 조정의 원로로서 영광스럽게 은퇴한 76세까지는 제 2기라고 할 수 있고, 고향에 내려와서 신선처럼 살면서 강호가도를 창시하고 영남사림의 정신적 지주로서 살다가 타계한 89세까지를 제 3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본 장에서는 이와 같이 3단계로 나눈 이현보의 생애를 큰 틀로 하여, 제 2기 때의 한시 작품 「명농당(明農堂)」과 「분어행(盆魚行)」을, 제 3기 때의 국문시가 작품「효빈가(效嚬歌)」,「농암가(聾巖歌)」,「생일가(生日歌)」,「어부가(漁父歌)」,「어부단가(漁父短歌)」를 각각 살피어 보겠다.
2. 본론
2.1 불우했던 30대의 관직생활 (제 1기)
이현보의 자는 비중(棐仲), 호가 농암(聾巖), 본관은 영천(永川)이니 인제현감(麟蹄縣監)을 지낸 흠(欽)과 안동 권씨(安東 權氏)의 아들로 세조(世祖) 13년(1467) 7월 19일, 경상도 예안현의 분천리(汾川里) - 현 안동군(安東郡) 도산면(陶山面) 분천동(汾川洞) - 에서 태어났다. 이현보는 9세 때 서당에 들어가서 공부를 시작하였으나 사냥을 좋아하고 학문에는 힘쓰지 않았다. 그러나 19세 때 예안향교(禮安鄕校)에 입학하여 발분, 29세 때 소과인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고, 32세 때(1498년) 마침내 문과(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교서관(校書館)에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로 분관(分館)되었다.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쳐 사관에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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