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도서관 및 국회도서관을 몇 번식 왔다갔다하며 며칠씩 밤을 새워가며 힘들게 한 과제입니다.
목차
Ⅰ. 민족사학의 성립과 전개 --개항 전후
1. 애국계몽사학
2. 민족주의사학
Ⅱ. 일제의 한국사 왜곡 --일제통치기
-조선사편수회와 한국사 왜곡
1. 조선사편수회의 성립과 발전
2. 일제의 조선사편수회설치와 그 의도
3. 조선사편수회의 조직과 인적구성
4. 조선사편수회의 조선사 편찬과 그 의도
5. 식민사관을 통한 역사왜곡의 중심인물
Ⅲ. 국사편찬위원회의 연혁(沿革)
1. 국사편찬위원회의 성립
2. 국사편찬위원회의 정비 --1960년대~1970년대
3. 국사편찬위원회의 발전 --1980년대
4. 국사관의 신축과 과천시대의 개막 --현재에 이르기까지
Ⅳ. 결론 및 생각
본문내용
Ⅱ. 일제의 한국사 왜곡 --일제통치기
-조선사편수회와 한국사 왜곡
우리나라는 일제의 식민지로 떨어짐으로써 우리 스스로 우리의 역사를 정리하고 편찬하는 전통을 박탈당하였다.
1. 조선사편수회의 성립과 발전
1920년대 일제의 정책은 수탈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우리민족을 분열시키고, '역사'를 단절시키는 수준에까지 나갔다. 일본은 '자생왕조'라는 허구의 합리화 이외에도, 당시 3·1항쟁으로 고조된 한국인의 독립의식을 희석시킬 고차원의 식민지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더욱이 '역사' 왜곡을 자행했다.
한국인의 '역사의식'을 흐리게 하여 장기적인 식민지화의 포석을 굳히는데 있어서, 무력으로 한국을 병탄한 일제는 군사적·경제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역사적·문화적 측면'에 있어서도 일본이 한반도 지역보다 우위에 있었음을 조작, 교육하는 일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일제는 그 시책의 하나로서 1922년 12월 4일 훈령(訓令) 제64호 '조선사편찬위원회' 규정을 제정, 공포하여 새롭게「조선사편찬위원회」를 설치하고,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을 위원장으로 주요인물을 중심으로 한 15명의 위원회를 조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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