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수원 화성과 주변 도시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했습니다. 축조 당시와 축조 이후 모두 포함입니다.
목차
1. 화성의 개요
2. 화성 축조 당시의 정세와 축성 계획
3. 화성의 구성 및 특징
4. 화성과 주변 환경과의 관계
5. 화성의 보수공사와 최근 소식
6. 앞으로의 전망 및 소감
7. 참고문헌 및 사이트
본문내용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 3호로 지정되었다. 둘레,743m, 길이 5,520m, 높이 4.9m~6.2m이며 면적은,18만 8048㎡이다. 수원성은 단순히 토축된 읍성이었으나, 조선 정조 때 성곽을 새로이 축조함으로써 이후로는 화성이라 하였다. 성내에 어목헌지, 관청전지, 문루전지, 객사후지 등의 못이 있었다.
화성이라 할 때는 그 안에 장안문, 팔달문, 화홍문, 장악당, 북동, 북서포루, 봉수당, 낙남헌, 서장대, 방화수류정, 강무당, 북옹성, 북포루, 남암문, 적대, 남옹성, 만석거, 남장대, 영화정, 창룡문, 남공심돈, 화서문, 남수문, 서북공심돈, 북암문, 동북노대, 서포루 등을 갖추게 되었다.
정약용의 성설을 설계지침으로 하고, 채제공을 중심으로 조심태 등의 진력으로 이룬, 뛰어난 과학적인 구조물이다. 돌과 벽돌을 혼용한 과감한 방법, 거중기 등의 기계를 크게 활용하고 용재를 규격화 한 점, 화포를 주무기로 하는 공용화기 사용의 방어구조 등은 다른 성곽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것이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화성의 축성은 흔히 조선 22대 왕인 정조가 비명에 주은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의 발로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한 읍을 새로 옮기고 거기에 국력을 기울여 새로운 모습의 성관을 축조한 대역사의 동기를 단순히 부친에 대한 효심에만 두는 것은 상식적으로 설득력이 부족한데, 거기는 새로운 도시의 건설이라는 문제에 얽힌 당시의 정치적인 배경이 크게 작용하였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곧 화성은 기존의 수원읍을 새로운 장소를 옮기고 나서 이 읍을 보호하는 성곽으로 새로 축조한 것이다.
참고 자료
①「수원성」김동욱, 1989, <대원사>
②「실학정신으로 세운 조선의 신도시, 수원 화성」김동욱, 2002, <돌베개>
③ http://100.naver.com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