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 정주영과 이병철 비교연구
- 최초 등록일
- 2005.04.24
- 최종 저작일
- 2005.04
- 1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정주영과 이병철이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 끼친 영향은 엄청난 것이었다.~
목차
출생과 성장
사업의 시작 - 쌀가게 주인과 20대의 대지주
삼성물산공사와 현대자동차공업사
보리밭잔디와 설탕
정주영의 배와 이병철의 컬러 텔레비전
부하직원 사랑법
이병철과 정주영의 패션감각
이병철과 정주영의 아껴 쓰기
뛰기 전에 생각하는 자와 뛰고 나서 생각하는 자
본문내용
출생과 성장
이병철은(1910 ~ 1987)은 부잣집 아들이었다. “풍년이면 2,000석이요, 흉년이면 1,500석”인 지주의 집안이었다. 그는 경남 의령의 천석꾼 집안에서 이찬우의 4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이병철의 조부 이홍석은 당대의 거유였고, 대대로 천석꾼의 지주였다. 이병철은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서당에서 한학을 잠깐 배우다가 지수보통학교, 중동중학 등 정상적인 학교교육을 받고 일본 와세다 대학까지 유학한 엘리트였다.
정주영은 강원도 통천에서 가난한 농사꾼의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여섯 살부터 아홉 살까지 서당에 다닌 것과 송전초등학교를 졸업한 것이 학력의 전부였다. 워낙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정주영(1915 ~ 2001)은 그야말로 먹고살 길을 찾기 위해 무려 네 번의 가출을 단행한 가출소년이었다.
두 인물은 출신부터가 판이했다.
이병철은 태어나면서부터 먹을 걱정, 입을 걱정을 해본 적이 없었지만, 정주영은 아침에만 밥을 먹고 점심은 굶고 저녁에는 풀죽 한 그릇으로 때우고 잠을 청해야만 했다.
이병철이 와세다 대학에 유학하고 있을 때, 집에서 매달 보내오는 하숙비는 일반 샐러리맨의 5개월치 봉급에 해당하는 거액이었다. 그 때 정주영은 가출을 거듭하고 있었다. 여름 내내 일해야 밥 한 끼 제대로 먹을 수 없는 농사일을 걷어치우고, 돈을 벌고 싶어 했던 것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서당에 다녔다는 것이다.
이병철은 다섯 살 때부터 조부가 운영하던 문산정에서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해서 5년간 통감이나 논어 등을 배웠다.
정주영도 조부가 서당의 훈장이었다. 그도 여섯 살 때부터 조부가 운영하는 서당에서 3년간 소학, 대학, 자치통감, 오언시, 칠언시 등을 배웠다. 이 덕분에 그는 보통학교 시절에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었다고 한다. 정주영이 서당 공부기간이 비록 3년으로 짧았지만, 그가 배운 대학이나 자치통감, 칠언시, 오언시는 요즘 4년재 대학 출신들도 한문으로 읽고 해석할 수 없는 만큼 높은 수준이었다.
참고 자료
www.naver.com
www.yahoo.co.kr
www.daum.net
이병철 vs 정주영 (한국경제신문사 발간)
이땅에 태어나서 (정주영 지음)
다시 이병철에게 배워라 : 기업경영의 기본 (서울문화사 발간)
www.nate.com
www.empas.com
한국창업 CEO의 기업가 정신에 관한 연구 - 이병철, 정주영, 구인회,신용호의
사례연구를 중심으로...
(한국전문경영인학회 이우영, 박유영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