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최치원의 생애와 한시
- 최초 등록일
- 2005.04.11
- 최종 저작일
- 2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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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나름대로 진짜 열심히 했습니다~
목차
1.머리말
2.본문
2-1 최치원의 생애
2-2 최치원의 한시
-秋夜雨中(추야우중)
-題伽倻山讀書堂(제가야산독서당)
3.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고운(孤雲) 최치원(催致遠)은 동국문종(東國文宗)이라고 불리는 신라 말기의 최고의 문인이다. 신라 말기는 정치 · 사회적으로 커다란 혼란기였다. 이러한 시기를 살았던 최치원의 생애와 시대 배경을 통해서 그의 삶과 문학작품을 살펴보겠다.
Ⅱ. 본문
1.催致遠의 생애
고운(孤雲) 최치원(催致遠, 857~?)은 신라 말기에 태어나 그 시대가 자신과 육두품 계층에 부과한 짐들을 감내하면서 순탄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된다.
그의 생존시기를 전후한 때는 국내외적으로 혼란한 시기였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남쪽에서,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족들이 세운 발해가 북쪽에서 각각 독특한 문화를 창조하며 병립하던 ‘남북국시대’였다. 이 때, 동아시아의 국가관계를 이끌어가던 당나라는 한반도의 지배가 여의치 않자 이이제이(以荑制荑) 정책으로 신라와 발해가 서로 상호견제하고 경쟁하게 하였다.
이러한 대외적 상황에서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화쟁(和諍)의 논리로 상하를 아우르려 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국을 지배한 서라벌의 귀족은 불교의 정신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사치스럽고 화려한 생활을 누리며 태평성대의 꿈을 꾸었고, 이에 비해 백성들의 고난은 가중되던 시기였다.
또한 서라벌의 귀족은 골품제(骨品制)에 의해 성골, 진골, 육두품, 오두품, 사두품 등으로 신분에 의한 구분이 있었다. 육두품 이하는 사회적 진출에 제한이 있었고, 설사 뛰어난 재능이나 나라를 구할 만한 경륜을 지녔다 해도 진골 지배체제를 밑에서 뒷받침해 주는 구실을 하는 데 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불만과 함께 비판 정신이 싹텄다.
참고 자료
민족문학사연구소, 민족문학사 강좌(上), (주)창비, 1995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1, (주)지식산업사, 1994
趙東一, 韓國文學思想史試論, (주)지식산업사, 1978
이종건, 한시가 있어 이야기가 있고, 세문社,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