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는 우리가 현유하는 최고(最古)의 사적(史籍)으로 한대의 사마천의 『사기』와 비교해 보아도 1200여년이나 뒤진 시대의 저술이며 일본의 최초의 왕조사적 사서인 『일본서기』보다도 4백여년 후의 저작이다. 이렇게 만출(晩出)된 사서이니만큼 그간의 역사기술의 발전이 여기에 반영됨으로써 내용, 체재가 갖추어질 것이 생각될 수 있지만 또한 서술 대상 시대에서 멀리 떨어지게 됨으로 해서 상세를 결(缺)하고 정확하지 못한 점이 많을 것도 짐작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삼국사기』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비평이 많았으며, 대부분은 부정적 비판으로 종시(終始)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지나친 유가윤리와 중국 중심의 사상에 사로잡혀서 건조하고 왜곡된 역사상을 심었다는 비평을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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