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홍경래난과임술민란
- 최초 등록일
- 2004.12.13
- 최종 저작일
- 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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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수업때 발표했던 발제지입니다.
조선시대 농민항쟁중에서 대표되는 홍경래난과 임술민란에 대해서 작성했는데 많은 참고 되시기바랍니다.
목차
◎ 들어가며..
◎ 본론
1. ‘홍경래의 난 ’ 배경
2. ‘홍경래의 난‘ 전개과정
3. 항쟁의 역사적 의의..
4. 임술민란이 일어나기까지..
◎ 마치며..
본문내용
1. ‘홍경래의 난 ’ 배경
‘홍경래의 난’을 이끈 주도 세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당대의 경제구조와 신분변동을 살펴봐야 한다. 이것은 세도정치에 의해 야기된 제반 부조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18세기와 19세기 초엽에는 농업, 상공업, 사회신분 등 사회 전반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농업에 있어서는 농업기술의 발전으로 벼농사가 종래의 부종법(付種法)에서 이앙법(移秧法)으로 옮아갔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단위 면적 당 노동력이 대폭 감소되어 이른바 노동집약적인 생산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또한 중앙정부의 비호 아래 불법적인 토지겸병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광범하게 진전되었으며 지주전호제(地主佃戶制)가 양적으로 팽창되어 갔다.
이 같은 현상으로 생성된 무토불농지민들은 생활타개의 방법으로 상업에 종사하거나, 도시나 광산지방에 흘러들어 공업에 종사하거나, 또는 심할 경우엔 품팔이로 전락하거나 도시 빈민이 되어 막노동에 종사하였다. 이러한 일도 찾지 못할 경우엔 도적이 되거나 걸식 행각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무리들의 숫자도 꾸준히 늘어만 갔다.
한편 이와 같은 무토불농지민을 한 변화로 하고, 이들과 대조적인 일단의 사회계층이 또한 대두하고 있었던 것도 이 시기의 한 특징이다.
그것은 스스로 직접 농사에 종사하면서 경영규모가 클 경우에는 스스로 관리자나 감독의 직책을 맡고, 노동자는 무토불농지민의 노동을 고용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농업을 합리적으로 경영, 부를 축적하는 계층이 그것이다. 이들은 선진적인 농업기술에 대한 지식과 현장을 겸비하여 봉건지주의 농지를 빌려 소작을 하되 유민들을 고용하여 합리적인 경영을 통해 생산량을 극대화시켜 일정 배분량을 차지하였다. 그것으로 자기의 토지를 구한 뒤 다시 재투자하는 등 혁신적인 경영방식을 운영하였다.
참고 자료
◎ 민란의 시대 - 고성훈 외7 (가람기획)
◎ 물구나무서서 보는 한국 역사 - 김현묵 (녹진 출판사)
◎ 뿌리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 김종수 (솔 출판사)
◎ 한국근대사입문 - 이종범, 최원규 편 (혜안출판사)
◎ 1984농민전쟁연구2 (18,19세기의 농민항쟁) - 한국역사연구회지음 (역사비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