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일동장유가] 일동장유가
- 최초 등록일
- 2004.12.09
- 최종 저작일
- 2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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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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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일동장유가는 00 김인겸(1707~1772)이 지은 8천여구의 장편으로 000의 <연행가>와 더불어 기행가사의 백미다. 그는 영조 39년(1763)년에 일본 통신사의 삼방서기(삼방서기)로 수행하여 약 1년간 일본 경도(경도)를 다녀와서 보고 느낀 바를 예리한 관찰력으로 노래하였다. 일본의 풍속, 제도, 인정 등을 개성적인 판단을 삽입하면서 실감있게 서술했다. 임란의 적대감이 아직도 남아서 조선 문물의 우수성을 입증한 것이 중요하고 국서를 전할 때는 동행하지 않아 선비의 기개를 보였으며 재주가 뛰어나 시를 얻으려 몰려드는 문사들을 감탄케 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통신 활동
기간 : 763년(영조 39) 8월 3일부터 이듬해 7월 8일에 돌아오기까지 11개월(일본에 머물렀던 기간은 11개월이고, 나머지는 왕복 기간이다.)
여행 목적 : 일본 관백 원가중이 퇴휴하고 그 아들인 원가치가 관백의 자리를 계승하자 일본 측에서 구호를 또는 수교하자는 요청이 왔으므로, 조정에서 이를 허락하여 영조 39년 게미 8월에 통신사를 차출하였다. 일본의 관백인 토쿠가와 이에시게가 죽자 그의 아들 토쿠가와 이에하루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한 것임.
여행한 곳 : 대마도 - 오오사카 - 에도
기타 : 일종의 문화사절단 성격을 띠고 있었으며, 우리나라는 문화국으로 일본의 야만적이고, 비문화적인 면을 멸시하는 경향이 농후하여 통신사들은 가는 곳마다 김인겸이 귀국하여 영조에 복명한 것을 보면, 왜인에게 지어준 것이 몇천 수가 된다고 하였으니, 그 때의 외교는 작시(作詩)외교라고 할 만 것이었다. 고종 13년에는 수신사로 이름을 바꾸어 김기수가 갔었고, 다음 해에는 김홍집이 다녀왔다.
참고 자료
海笑日記, 韓國紀行文學硏究(崔康賢, 一志社, 1982), 日東壯遊歌의 作者 및 背景硏究(金南秀, 建國大學校碩士學位論文, 1975).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