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 민족사학은 대종교와 밀접한 관련 위에서 전개되었다는 것이 주목할 특색이다. 대종교인의 역사인식은 한말 신채호가 설정했던 부여족 중심의 민족사보다도 공간적으로나 종족상으로 훨씬 확대된 것이며, 신채호의 민족주의가 부여족 중심, 만주 중심의 대조선주의(大朝鮮主義)라면, 대종교의 그것은 동이족 중심, 범동북아세아(汎東北亞細亞)중심으로 확대된 것이라 할 수 있다.
1909년에 창립된 대종교는 1910년의 국치를 계기로 그 교세가 더욱 확장되어 신민회(新民會)를 비롯한 만주와 중국본토에 망명했던 독립운동가의 대부분이 그 교단조직에 참여하였으며, 1920년 전후의 시기에는 40만 명의 교인을 포용할 만큼 번성하였다. 따라서 1910년대의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한 것은 대종교단이었으며, 독립 운동가이자 역사가인 안확(安廓), 최남선(崔南善), 안재홍(安在鴻), 정인보(鄭寅普), 문일평(文一平)등이 직접 혹은 간접으로 대종교의 영향을 받으면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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