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실 이혼의 사회사 서평, 비판적 보고서 폐비 윤씨 부분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24.03.31
- 최종 저작일
- 20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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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여성의역사]과목 <조선왕실 이혼의 사회사>에서 "폐비 윤씨" 부분을 보고 작성한 서평, 비판적 보고서입니다.
목차
1.서론
2.본론
1장. 칠거지악
2장. 폐비 윤씨 개인의 생애
3장. 가부장제와 성종의 왕권 강화
4장. 대비들의 반응
5장. 폐비 윤씨 죽음이 이후 정국에 미친 영향
3.결론
본문내용
서론
조선 시대에 가장 유명한 왕비 중에는 폐비 윤 씨가 있다. 그는 성종의 두 번째 비(妃)로 연산군의 생모이기도 하다. 윤 씨는 이혼을 당하고 종국에는 남편이었던 성종에게 죽임을 당했는데, 그 과정에서 활용된 칠거지악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윤 씨의 생애 및 성종이 윤 씨를 죽인 이유, 대비들의 역할, 폐비 윤 씨 사사 이후 정국에 대해서 차근차근 살펴보겠다.
본론
1장. 칠거지악
칠거지악(七去之惡)은 유교에서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일곱 가지 조건을 말했다. 칠거지악의 상세한 내용으로는 불순(不順),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죄, 무고(誣告) 거짓으로 일러바침, 무자(無子) 자식을 낳지 못함, 음행(淫行) 부정하고 음란한 행동, 질투(嫉妬) 시기심이 많고 강짜를 부리는 경우, 악질(惡疾) 전염병이나 불치병에 걸림, 구설(口舌) 말이 많음, 절도(竊盜) 남의 물건에 손을 댐이다. 폐비 윤 씨가 폐비된 첫 번째 원인은 투기했다는 것이었다. 투기는 고대부터 부인들이 가장 멀리해야 하는 일로 받아들여졌다. 부여에서는 투기한 부인은 시신을 내다 버리고 장례를 치르지 못하게 하였다. 극형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참고 자료
이배용(1999). 우리나라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청년사
리처드 도킨스(2018). 이기적 유전자, 홍영남 이상임 역, 을유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