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진족의 발전
(2) 후금을 세운 누르하치
(3) 후금을 세운 누르하치의 업적
(4) 고려를 위협한 여진
(5) 만주 문자 제정
(6) 만주족의 체제 정비
(7) 만주족의 상업
(8) 만주족의 외교
본문내용
거란은 압록강의 서북지역에서 융성하던 민족이었는데요 고려와는 초기부터 적대관계를 가졌습니다.
거란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던 고려는 이후 3차례에 걸쳐서 거란의 침입을 받게 됩니다.
거란의 1차 침입은 고려 성종시기에 있었는데요 이 때에는 서희가 외교담판을 하여 전쟁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거란의 1차 침입 당시 서희가 외교담판을 한것과 관련하여 고려사 서희 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을 하였습니다.
서희(徐熙)가 국서(國書)를 받들고 소손녕(蕭遜寧)의 진영에 가 통역관을 시켜 서로 인사하는 예(禮)를 물었는데, 소손녕이 “나는 대조(大朝)의 귀인(貴人)이라 마땅히 뜰에서 절하여야 한다”고 대답하였다. 서희가 말하기를, “신하가 군주에게 아래에서 절하는 것이 예법이지만 양국 대신이 서로 보는데 어찌 이와 같이 하리오” 하였다.
이렇게 두세 번 말해도 소손녕이 받아들이지 않자, 서희가 노하여 관사로 돌아와서는 누워 일어나지 않았다. 소손녕이 기이하게 여기고는 당(堂)에 올라와서 서로 예를 행하는 것을 받아들였다.
서희가 영문(營門)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들어가 소손녕과 함께 뜰에서 서로 읍(揖)하고 당에 올라 예를 행하고는 동서(東西)로 마주 앉았다. 소손녕이 서희에게 말하기를 “그대 나라는 신라 땅에서 일어났고 고구려 땅은 우리의 소유인데 그대들이 침범해왔다.
또 (고려는) 우리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데 바다를 넘어 송(宋)을 섬겼으므로 이제 군사를 이끌고 온 것이다. 만일 땅을 떼어서 바치고 통교한다면 무사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서희가 말하기를, “아니다. 우리나라가 곧 고구려의 옛 땅이다. 그러므로 국호를 고려라 하고 평양에 도읍하였으니 만일 국토의 경계로 말한다면 상국(거란)의 동경(東京)은 전부 우리 지역 안에 있는데 어찌 영토를 침범한 것이라 하는가? 그리고 압록강의 안팎 또한 우리의 지역인데 지금 여진(女眞)이 그 사이에 도둑질하여 차지하고는 교활하게 대처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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