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개관 미륵사터 왕궁리 오층석탑 동고도리 석불 김제지역 개관 금산사 강증산유적지
- 최초 등록일
- 2024.02.23
- 최종 저작일
- 20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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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익산개관 미륵사터 왕궁리 오층석탑 동고도리 석불 김제지역 개관 금산사 강증산유적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익산지역 2
익산개관 · 미륵사터 · 왕궁리 오층석탑 · 동고도리 석불
Ⅱ. 김제지역 16
김제지역 개관 · 금산사 · 강증산유적지
본문내용
Ⅰ. 익산지역
1. 익산개관
전라북도의 문화적 토대는 단연 백제계이다. 그중에서도 익산은 마한·백제 문화권의 중심을 이룬다. 익산에는 잃어버린 백제사의 한 모서리를 받쳐줄 많은 유물·유적들이 집중적으로 분포하여 오늘이라도 자신들이 간직한 내력을 밝혀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익산은 전라북도 북서부에 위치하여 북으로는 금강 줄기를 사이에 두고 충청남도 부여군 및 논산시와, 남으로는 만경강을 끼고 김제시와 닿아 있다. 사방이 평야로 둘러싸여 드나들기가 편리한 까닭에 예나 지금이나 전라도로 들어서는 초입이 된다. 호남선이나 전라선 열차를 타면 충청남도 강경을 지나 익산 땅에 들어서고 호남고속도로를 통하더라도 충청남도 논산을 지나 익산시 여산면으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동남쪽으로는 전북평야, 서남쪽으로는 군산시의 임옥평야, 서북쪽으로는 충청남도 논산시의 강경평야와 닿아 있는 익산 땅은 전라북도에서 김제시 다음으로 경지율이 높고 쌀 생산량이 많은 곳이다. 뿐만 아니라 금강과 만경강 덕분에 수로교통이 편리하여 신석기 시대 이래 농경문화가 번창했고, 삼한 시대로부터 여러 시대에 걸쳐 인근 지역의 정치적·문화적 중심지가 되었다. 익산 땅에서도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 곳은 오늘날의 금마면과 왕궁면을 포괄하는 옛 금마 지역이다. 일찍이 삼한 시대에 기자의 41대손인 기준은 위만의 난을 피하여 바다를 통해 남으로 내려오다가 금마 땅에 이르러 마한의 왕이 되었다. 이것이 마한 54개 소국 가운데 건마국(乾馬國)이었다. 그후 백제의 시조 온조는 마한을 병합한 후 이곳을 금마저(金馬渚)라 불렀다.
백제문화의 전성기였던 600년 무렵, 무왕은 금마저를 도성으로 삼고 미륵사, 제석사와 같은 거대 사찰과 왕궁평성을 쌓았다. 이를 근거로 백제가 금마 지역으로 천도하려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나, 또 한편으로는 사비성, 웅진성과 함께 이곳을 별도(別都)로 경영했으리라는 주장도 있다. 백제가 망한 후 그 역사 기록이 철저히 인멸되었고, 남아 있는 기록조차 단편적인 까닭에 사료를 통해 어떠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근래의 발굴 결과로 백제 중엽 이래 이 지역이 공주, 부여와 함께 백제문화의 또 하나의 중심지를 이루고 있었음이 확인되고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