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근기학파의 역사인식
- 최초 등록일
- 2004.08.28
- 최종 저작일
- 2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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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근기학파및 가야사, 신채호의 사상등 우리의 역사인식에 관한 정말 노력해서 쓴 레포트입니다
목차
근기학파란
근기학파의 사상
성호의 사상
청담 이중환(李重煥, 淸潭)의 사상
삼국시대란 표현이 맞는가?
실학자들의 인식
가야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
단군론, 정통성의 대두
단재 신채호의 사상
우리가 가져야 할 역사인식
본문내용
우리는 보통 한국 고대사를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라는 이름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이것으로 한국 고대사를 모두 설명할 수 있을까? 시기적으로 보아 고구려, 백제, 신라의 세 나라가 우리 나라의 영토를 셋으로 나누어 지탱하고 있던 것은 562년부터 660년까지의 98년간이었으므로, 삼국시대를 고집하면 시간적으로 그 이전의 천년 이상을 버리게 된다. 이는 통일신라시대라고 표현하는 순간에 대동강 이북에서 만주에 이르는 한국 고대의 영토에 대한 기억을 상실케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삼국시대라는 관념은 고려시대 중기의 정치가 겸 역사가인 김부식이 1145년에 편찬한 사서인 <<삼국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은 그것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이나 그 이전에는 이규보가 말하는 바와 같이 고려 전기부터 <<구삼국사>>가 있었다. 그러므로 그 역사서들의 이름만 보아도, 고대의 역사를 ꡐ삼국ꡑ으로 정리하는 것은 일단 고려시대 사람들의 인식에서 비롯한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고려인들이 발해를 제외한 후삼국을 통일한 것을 그보다 앞선 고대까지 소급하여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고려인들의 그 인식도 실은 신라인들의 것을 계승한 것에 불과하다. <<삼국사기>>에는 신라의 건국 연대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이것은 최후 승자인 신라인들의 주관적인 역사 인식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삼국사기>>에는 이를 의심하거나 수정하려는 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또한 신라는 660년과 668년의 두 차례에 걸쳐 백제와 고구려를 멸한 이후, 삼한과 삼국을 동일시하고 신라가 삼한을 통일한 것을 자랑하였다. 692년에 당나라가 신라 태종 무열왕의 묘호를 바꿀 것을 요구하자 신라가 이를 거절하며 당에 보낸 국서에서 신라인들의 그러한 자부심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신라 말의 최치원은 마한이 고구려가 되고, 진한이 신라로 되고 변한이 백제로 되었다고 보았는데,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최치원의 견해가 옳다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신라인들의 역사 인식과 그를 계승한 고려인들의 인식이 현재의 관점에서 보아도 옳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우선 삼한과 삼국을 동일시하는 것도 문제가 되며, 또한 우리 역사의 터전에서 명멸했던 고조선, 부여, 가야, 발해 등을 무시하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가야만 보더라도 동쪽으로는 경상남북도의 낙동강 유역부터 서쪽으로 소백산맥을 넘어 전라남북도의 동부 지역에 이르는 옛 가야 주민들의 역사를 무시하게 된다. 이는 결국 한편으로는 우리 나라의 역사를 잘못 그르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족 전체의 경험을 시간적, 공간적으로 축소시키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다분히 신라인의 시각에서 정립된 삼국시대라는 개념은 우리 역사 속에서 가야사를 소외시켰고, 이는 결과적으로 삼국시대 이전의 천년 세월을 방기하는 결과를 초래시켰다. 미완의 문명 7배견 가야사(김태식 지음/푸른역사)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