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발해의 형성
2. 대조영과 관련한 기록
3. 발해의 정치
4. 발해의 문화
5. 발해의 멸망
본문내용
고구려의 옛 영토인 만주에서는 고구려 유민들의 부흥 운동이 끈질기게 계속되었는데요 고구려의 옛 장군이었던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거느리고 동모산을 근거로 하여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진국이라 하였습니다.
동모산을 근거로 하여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진국이라 하였던 발해는 국호를 고쳐 발해라 하였고요 요동 지방을 제외한 고구려의 옛 영토를 거의 회복하였습니다.
발해는 선왕시기에는 전성기를 이룩하였습니다.
전성기 시대 발해의 영토는 동쪽으로는 연해주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대동강, 원산만 이북의 땅이었습니다.
근대에 나온 역사서적이ᅟᅵᆫ 대동청사에서는 우리민족이 만주지역에 건립한 국가인 발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 하였습니다.
발해는 만주(滿洲)에 있던 나라로서 속말(粟末)【속말하(粟末河)이니 곧 송화강(松花江)】 말갈(靺鞨)이라고도 하지만, 실제로는 고구려(高句麗) 유민의 나라이다.
고구려가 망하자 남은 무리인 걸걸중상(乞乞仲象)과 걸사비우(乞四比羽) 등이 백두산(白頭山) 동북 지역에 있는 오루하(奧婁河)에 자리를 잡고 발해국을 창건하였다.
단기 3046년(713)에 걸걸중상의 아들인 대조영(大祚榮)이 즉위하여 나라 이름을 진국(震國)이라고 하였다가 그 후에 발해로 바꾸어 불렀다1). 국력이 점점 강성해져서 무예왕(武藝王)과 익수왕(益秀王)은 영토를 더욱 넓혔으니, 그 땅이 남쪽으로는 신라(新羅)와 이웃하였고, 동쪽으로는 바다에 닿았으며, 서쪽으로는 거란[契丹]과 인접하였으며 5경(京) 15부(府) 62주(州)를 설치하였다. 또 숙신(肅愼)의 옛 땅을 상경(上京)으로 삼았는데, 여기는 곧 용정부(龍井府)【지금의 북간도(北間島) 용정촌(龍井村)】이니, 대조영이 목책(木柵)을 세웠던 곳으로서 백두산 동남쪽 동모산(東牟山)【지금의 모우산(牟隅山)】 아래에 있다.
그 남쪽은 중경(中京)으로서 현덕부(顯德府)라고 하며, 예(濊)2)ㆍ맥(貊)의 옛 땅은 동경(東京)이니 용원부(龍原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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