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설교문 예시 <창세기> 22
- 최초 등록일
- 2023.08.26
- 최종 저작일
- 20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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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설교문 예시 <창세기> 22"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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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태풍이 지나가고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개인 맑은 하늘을 보면서 조금 복잡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뉴스에는 여전히 어느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15살 아들과 함께 차를 빼러간 엄마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들은 승용차에 갇힌 엄마를 구했고 간신히 승용차를 빠져나온 엄마는 가슴까지 차오르는 물을 보면서 어깨도 불편하고 수영도 못하는 자신이 아들에게 짐이 될까 너 먼저 탈출하라고 당부합니다. “엄마, 키워줘서 고마워. 사랑해” 라는 말을 남기고 어렵게 발걸음을 옮긴 아들은 나중에 비상구 계단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이 되었고 엄마는 살았죠. 그 사건이 엄마에게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을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본인의 생존만을 감사하고 도리어 자랑스러워하는 부모가 있다면 그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일 겁니다. 오히려 자신을 ’죄인‘으로 인식하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특징이죠. 어쩌면 기독교의 구원론도 그런 점에서 비슷하다 할 수 있을 겁니다.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사랑은 최선이었는지를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고, 그들의 부재를 가슴아파하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 정체성이어야 하는 것이겠죠. 슥 13:6에 ’이는 나의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고 한 것처럼 기독교는 상처의 종교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상처받은 치유자‘이신 거죠.
그래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성경은 디나의 아픔과 가족들의 반응을 여과없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앙 공동체라면 당연히 이렇게 피해자들을 향해 열려 있어야하는 것이겠죠. 그러게 여자가 혼자 왜 돌아다녀? 위험한 곳에 가지 말아야지 네 행실도 문제가 있었던 거 아냐, 라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2차 가해자가 없는 공동체, 무엇보다 먼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입장에서, 강자가 아닌 약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말할 수 없는 아픔과 상처를 경청하는 공동체여야 할 겁니다.
저는 오늘 창 34장과 35장의 내용을 다루면서 치유되기 어려운 깊은 상처를 입은 피해자와 그 가족이 어떻게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를 밝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는지 조금 생각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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