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설교문 예시 <창세기> 19
- 최초 등록일
- 2023.07.22
- 최종 저작일
- 20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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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설교문 예시 <창세기> 19"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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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인간에게는 선악과를 먹는 타락이전에 인식의 타락이 있었습니다. 선악과는 하와에게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것이었죠. 그리고 인식의 타락 이전에 말의 타락이 있었죠. 하나님은 세상을 말로 창조하십니다. 그건 말이 가진 고유의 힘이었죠. 그러나 사탄은 창조와 생명을 능력을 가진 말을 타락시켜 언어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사람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도구로 변질시킵니다. 카프카는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살 수가 없다고 했는데 사탄은 그렇게 신뢰를 깨는 방식으로 생명이 살 수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겁니다. 타락이후 인간의 모든 불행은 이런 과정의 무한 반복이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인간의 이런 근원적 불안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선의를 가진 어떤 사람들은 끊임없이 누구를 구원하려 하기도, 또 존재를 뿌리채 흔드는 불안상황에서 스스로를 구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과정을 통해 어떤 인간은 더욱 불행하게 되죠. 오늘은 그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창세기 29장 13,14절입니다.
13 라반은 조카 야곱의 소식을 듣고 즉시 달려 나와 그를 반갑게 맞으며 껴안고 입을 맞춘 다음 그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야곱이 자기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말하자
14 라반이 “너야말로 살과 피를 나눈 진짜 내 친척이구나” 하였다.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있는 우리는 조카 야곱에 한 “너야말로 살과 피를 나눈 진짜 내 친척이구나”라는 삼촌 라반의 말이 소름끼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언어는 사랑을 말하는 그 순간에도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처럼 소음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있죠. 말이 원래 가지고 있던 진실성, 생명창조와 같은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말에 대한 믿음보다는 로고스, 즉 말씀에 대한 믿음이 필요한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추구해야하는 것도 말씀이지 인간의 말은 아닌 것이죠. 그러면 말과 사랑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말을 곧 사랑이라 할 수는 없지만 사랑은 말로 표현될 수 있지요.
참고 자료
https://ko.wikipedia.org/wiki/%EC%A0%9C%EC%B9%A0%EC%9D%BC%EC%95%88%EC%8B%9D%EC%9D%BC%EC%98%88%EC%88%98%EC%9E%AC%EB%A6%BC%EA%B5%90%ED%9A%8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