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오화변, 역사 사건 가운데 하나를 택해 보고서 제출
- 최초 등록일
- 2023.06.28
- 최종 저작일
- 20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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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 사건 가운데 하나를 택해 보고서를 제출하시오.
MBC의 '옷소매 붉은 끝동'
목차
1. 서론
2. 본론
3. 결론
4. 출처
본문내용
Ⅰ. 서 론
MBC의 '옷소매 붉은 끝동'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자신이 선택한 삶을 지키고 싶은궁녀와 사랑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왕의 가슴 아픈 궁중 로맨스이다.
해당 드라마를 보면 '임오년의 그 날'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보다가 임오화변에 대해 알게 되었다.
우선 극 중 해석이 다양한 장면들이 많은데, 영조가 아들에게 자신의 콤플렉스를 투영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 먼저 가볍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해석은 영조가 일생 동안 겪어온 '출신 성분'과 '권력의 정통성을 부정당하는 것'에 콤플렉스가 있었고 이를 다음 왕에게는 해방시켜줄 것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 때문에 영조는 사도세자의 교육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을 것으로 보인다.
영조의 장남인 효장세자는 사도세자보다 먼저 태어났지만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 후로 한참동안 아들을 낳지 못하다가 영조의 나이가 마흔이 넘어서야 아들을 얻게 되었다. 그 아들이 '사도세자'였는데, 오랜 시간 기다렸기 때문에 그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였고, 그 애정만큼 그의 욕망도 컸을 것이다. 영조의 기대에 부응하듯 세자는 어려서부터 지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공부를 소홀히 할 뿐만 아니라 온갖 기이한 일을 하면서 궁녀들과 관리들을 죽이는 등 일탈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전개되면서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는 날로 악화되었고, 마침내 우리가 아는 임오년에 영조의 아버지는 아들 사도를 쌀통에 가두었다.
무더운 여름날 발생한 비극, 쌀통에 갇혀 8일 만에 세상을 떠난 왕세자. 이 사건은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임오년의 그 날'이라는 '임오화변(1762년)'을 뜻하는 말이었다.
Ⅱ. 본 론
내용 1.
임오화변이란,
영조 38년(1762) 5월 13일, 조선 제21대 영조는 아들인 사도세자를 폐위시키고 쌀통에 8년 동안 가두었다.
참고 자료
「정조대 탕평정국의 군신의리 연구」(최성환,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영조대 중반의 정국과 임오화변」(김성윤, 『역사와 경계』43, 2002)
「조선후기 탕평 연구」(박광용,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4)
『영조실록(英祖實錄)』
『정조실록(正祖實錄)』
강현식, 《심리학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 살림, 2008년, ISBN 89-522-1018-2, 254-26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