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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 속 여성, 궁녀에 대해서"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조선시대의 궁녀제도
2. 궁녀의 각 부서
1) 지밀
2) 침방·수방
3) 세수간
4) 생과방·소주방
5) 세답방·복이처
6) 퇴선간
7) 혜민서·내의원
3. 궁녀의 각 계급과 역할
1) 나인
2) 생각시
3) 비자
4) 방자
5) 무수리
6) 상궁
7) 의녀
4. 궁녀는 전문직 여성 공무원이었다?
본문내용
조선왕조에서 처음 여관(女官)의 이름과 등급을 정한 것은 태조 6년 3월에 조준과 정도전등에 의해 나타난다. 같은 해 4월, 궁인들에게 관직을 줬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때에는 그 인원수가 28명이었다.
그러다가 세종 10년 3월, 내관과 궁관의 제도를 보고했다는 내용으로 이때 여관제도의 기록이 나타나있다. 정1품부터 정4품까지 상급직급으로 왕의 후궁에 해당되며, 정5품은 상궁, 그 이하는 궁녀에 해당됨을 알 수 있다. 상궁은 궁녀들의 최고 직급으로 책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정6품부터 종9품까지 각각 직계에 따른 호칭이 있었으나, 이는 의식 때 직무 분장에만 쓰일 뿐, 평상시에는 ‘상궁’과 ‘나인’의 두 종류로 구분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외부인들은 모두를 통틀어 나인이라 지칭할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들 자신들은 반드시 상궁과 나인을 구분하여 썼다고 한다. 또한 나인은 ‘내인’이 정음이지만 나인으로 더 많이 불려졌다.
조선시대 중앙 정부의 문관과 무관을 합한 전체 정원은 채 5000명이 안되었다고 한다. 이에 비해 궁녀의 수는 684명이나 되었다고 전해진다. 궁녀는 궁궐에서 비중 상 가장 많은 인원수를 차지했으며, 그 하는 일 또한 광범위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많은 궁녀들은 각각 지밀, 침방, 수방, 생과방, 소주방등에서 전문적으로 일하였으며 계급에 따라 상궁, 나인, 생각시, 비자, 무수리, 방자등으로 구분되었다. 또한 혹자는 의녀를 궁녀에 포함하기도 한다. 이 많은 궁녀들은 모두 함께 모여서 지내지 않았으며 각각 부서별로 따로 평생을 지냈다.
궁녀의 선별은 각사의 하전인 천민만을 대상으로 하였다.
궁녀는 각 관사의 하전(下典) 만을 뽑아 들인다. 내비(內婢)는 선발하여 충원할 수 있지만 사비(寺婢)는 특별 교지가 없으면 뽑을 수 없다. 양갓집 여자는 일절 논하지 않는다. 양갓집 여자나 사비를 혹 추천해 올리거나 혹 궁녀로 들여보낸 자는 장형ㆍ도형 1년에 처한다.
참고 자료
정은임, 『계축일기』, 이화문화사, 2005, p.66.
황진영, 「조선시대 궁녀복식 연구」. 단국대학교 대학원, 2009, p.4 ~ 15
조미나, 「조선왕조 가례도감에 나타난 궁녀의 직무에 따른 복식연구」, 성신여자대학교, 2012
홍순민, 『조선시대 궁녀의 위상』 『역사비평』 68호,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