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관도대전과 적벽대전은 후한 말기에 약 8년의 차이를 두고 벌어진 전투로 조조 세력의 흥망성쇠를 결정지은 처음과 마지막 전투라고 칭할 정도로 두 전투 모두 조조 군의 위세에 큰 영향을 미친 전투였다. 관도대전은 200년에 허난 성 정저우 시에서 약 8개월에 걸쳐 진행되었고, 막강한 군사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던 원소와 조조의 세력이 전면으로 맞붙었던 사건이었으며 적벽대전은 208년 10월에 조조와 손권, 유비 연합군이 적벽에서 격돌한 사건이다.
관도대전이 중요성에 비해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것에 비해 적벽대전은 오늘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삼국지에서 가장 유명한 전투 중 하나로 꼽힌다. 이러한 차이가 발생한 원인은 삼국지 역사를 기반으로 창작된 <삼국지연의>에서 적벽대전을 더 큰 비중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정사에 비해 <삼국지연의>를 통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경우가 많았고, 후대에 들어서도 삼국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활발히 재 창작되며 이러한 인식이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2. 관도전투 개요
관도 전투가 일어난 가장 직접적 원인은 조조가 협천자를 했기 때문이었다. 협천자라 함은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한다는 의미로 조조가 헌제를 옹립한 뒤 자신이 스스로 대장군에 올라 황제의 이름으로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한 것을 말한다. 당시 조조와 원소는 각기 세력을 키워 중원 진출을 엿보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성장한 두 세력은 중원을 차지하기 위한 대결을 피할 수 없었다.
199년 원소는 공손찬을 죽이고 남하할 준비를 마친다. 조조는 196년부터 198년에 이르기까지 3년간 원씨 세력을 축출하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당시 원소의 세력은 청주와 병주를 비롯해 하북 지역 총 4개의 주를 차지하고 있었고, 조조는 연주와 서주 등 남쪽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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