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무장투쟁을 중심으로 한 민족해방투쟁
- 최초 등록일
- 2023.02.25
- 최종 저작일
- 2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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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항일무장투쟁을 중심으로 한 민족해방투쟁"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망국과 독립운동 근거지 신설
Ⅲ. 민족단체 통합운동의 실패
Ⅳ. 만주사변의 발발과 항일유격운동
Ⅴ. 결론
VI.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1910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이후 이를 되찾으려는 선혈들의 노력은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었다. 무장투쟁도 여러 가지 투쟁형태 가운데 하나였다. 무장투쟁은 일제의 침략성 때문에 우리 민족이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항일투쟁 방법이자 결정적인 항일투쟁 수단이었다. 이제까지 무장투쟁에 대한 연구는 주요 항일단체와 전투를 중심으로 항일운동의 전 과정에 걸쳐 폭넓게 이루어졌다. 항일단체 및 무장투쟁에 대한 연구는 1960년대까지도 참가자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된 사료적인 성격이 강한 글이 주류를 이루었다. 1960년대 중반경부터 국사편찬위원회 등에서 해외지역 독립운동에 관한 자료집을 출판하면서 연구의 기초가 마련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 들어 「독립군전투사(하)」(1975)가 편찬되었고, 몇몇 운동단체와 대종교(大倧敎)에 대한 초보적인 수준의 현황 파악도 있었다. 또한 1930년대 사회주의 운동계열의 항일무장투쟁에 관한 연구성과도 출판되었다. 이러한 자료와 연구성과는 이후 연구의 ‘이정표’ 역할을 하였다.
항일단체 및 무장투쟁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은 1980년대에 들어서였다. 특히 1980년대 중반경부터 「한국민족운동사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등 전문 학술지의 창간과 독립운동사를 전공한 선학들의 회갑 및 정년퇴임 논총이 발간되면서 많은 논문이 발표되었다. 금기시 되던 사회주의 운동계열의 무장투쟁에 대한 연구도 소장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198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되었다. 또한 무장투쟁의 지도자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등 연구주제가 더욱 구체화되고 다양화되는 추세이다.
Ⅱ. 망국과 독립운동 근거지 신설
국내에서의 항일활동은 1905년의 ‘을사보호조약’ 등을 계기로 일제의 지배력이 강화되는 한편, 1909년의 남한대토벌작전 등 월등한 군사력을 앞세운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커다란 곤란에 직면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조동걸, 1988, 〈항일무장투쟁사 연구의 시각〉, 《민족해방운동론 연구》, 백두
한홍구, 1988, 〈항일무장투쟁의 전개과정〉, 《민족해방운동론 연구》, 백두
한국역사연구회, 1966, 《한국역사입문③》, 풀빛
한영우, 1997, 《다시 찾는 우리역사》, 경세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