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조선시대 지방의 기록물 생산"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조선시대 지방의 기록관리체계
Ⅱ. 호적단자(戶籍單子)의 생산과정
Ⅲ. 호적중초(戶籍中草)의 생산과정
Ⅳ. 성책(成冊)의 작성과 호적대장(戶籍大帳)의 완성
Ⅴ. 한성부로의 상송(上送)과 관리·보존
Ⅵ. 본문의 내용을 정리하며
참고문헌
본문내용
조선의 관료제는 조선의 기록관리 체계를 더욱 발전시켰다. 고려와 달리 조선의 관료제는 인사의 고과나 시험 그리고 각 직무의 책임성을 강화하였다. 이는 자연스레 직무의 연속성과 증거능력을 중시하는 풍조로 이어졌다. 또 직무의 연속성과 증거능력을 위해선 문서 행정이 무엇보다 절실했다. 즉 이전과 달리 강화된 관료제는 필연적으로 문서 생산을 증대 시켰던 것이다. 문서 생산의 증대는 관리와 보관이라는 절차를 수반하였다. 이에 따라 조선 초기엔 중국 명의 『홍무예제』를 차용했으며, 이후 『경국대전』을 통해 조선 나름의 행정문서 관리 방식을 갖추었다. 기록의 생애주기에 따른 ‘생산-전달-정리-관리-보존-폐기’의 형태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행정문서 관리 방식은 중앙과 지방에서 체계적으로 이뤄졌다. 중앙의 행정문서는 왕을 중심으로 이뤄지거나, 또는 중앙관서 간에 이뤄졌다. 지방은 지방행정기관 상호 간에 문서가 전달-관리 되거나, 백성과 지방관아 간에 문서가 전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조선의 행정문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산되고 관리, 보존되었던 것일까? 이 부분에서 필자는 중앙차원의 기록관리 체계가 아닌 지방 차원의 기록관리 체계에 중점을 두고자 한다.
지방 행정기구에서 생산된 문서는 그 발신자-수신자의 관계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가령 백성들 상호 간에 문서, 백성들이 지방행정기관에 공증을 요청한 문서, 중앙 행정기관과 지방행정기관 상호 간 문서 등이 그것이다. 백성들 간에 이뤄지는 문서나 이들이 지방행정기관에 제출하는 문서의 생산은 곧 그들 자신이 맡는다. 이와 달리 지방행정기관 상호 간 또는 중앙 행정기관에 전달하는 공문서는 육방임과 기타 색임에 의해 생산된다. 이렇게 생산된 문서들은 이후 등록(謄錄)의 과정을 거친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관아 상호 간에 왕복하는 문서 및 백성에게 발급하는 문서는 모두 등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재발급이나 증빙의 목적을 띄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등록과 함께 『경국대전』의 장문서조(藏文書條)에 따라 기록물들은 분류 및 편철 과정을 거치게 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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