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덕여대 교양 국제관계의 이해 A레포트, 동아시아 사대교린, 베스트팔렌체제. 서희의 외교담판
- 최초 등록일
- 2022.09.10
- 최종 저작일
- 20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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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덕여대 교양 국제관계의 이해 A레포트, 동아시아 사대교린, 베스트팔렌체제. 서희의 외교담판"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동아시아의 사대교린 체제를 설명하고 중세유럽 베스트팔렌체제와의 차이점을 비교해 보라.
2. 993년 거란이 고려를 침공했을 때 고려 조정의 정책결정 과정과 이 결정과정에서 서희가 한 역할에 관해 설명하라.
3. 서희 - 소손녕 회담과 그 결과에 관해 기술하라.
4. 서희가 담판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에 관해 설명해 보라.
5. 외교관의 바람직한 자세에 관해 자신의 견해를 개진해 보라.
본문내용
사대란 약자가 강자를 섬긴다는 의미로 우리는 굉장히 부정적으로, 굴욕적으로 느낀다. 하지만 모든 나라에 강약의 차이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근대 이후에는 모든 국가가 상하관계를 맺는 것을 거부하지만, 근대 이전에는 국가 간 상하관계는 분명히 존재했다. 동양에서 중국은 황제, 조선은 왕이 존재했으며 중세 유럽에서 막강한 세력을 가진 신성로마제국 역시 황제로 칭했다. 황제국 외에 모든 나라는 국왕이었다. 국제 연합 합의 이전, 동아시아는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의 상호 합의인 사대를 통해 세계질서를 형성했다. 이 질서는 또한 동아시아에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사대란 원래 중국 최초의 왕조인 은과 주 사이의 약소한 제후국이 강대한 제후국에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복속한다는 의미로 공물을 헌상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우리나라 또한 삼국시대 모두 중국의 여러 국가에 사대를 하고 책봉을 받으며 우호 관계를 유지하였다. 이 관계는 조선 시대 때 특히 정형화되었다. 조선은 중국에서 한족 중심의 강력한 통일왕조인 명나라를 인정함으로써 성립된 국가로, 명과 조선 사이에는 사대와 책봉관계가 맺어지게 되었다. 조선은 해마다 정기적인 조공사절을 보냈으며 명에서는 조선이 새로운 국왕이 즉위할 때마다 책봉사절을 파견했다. 이후 명과 조선 은 큰 문제 없이 상호 공존의 국제관계를 유지했으며 임진왜란 때 명나라 또한 이 명분으로 조선에 군대를 파견하였다. 그 뒤 명과 청이 교체되자 조선은 큰 혼란에 빠졌다. 인조의 친명정책은 청으로부터 병자호란을 일으켰으며 결국 군사적인 차이를 이기지 못한 조선은 청에 대한 사대와 책봉을 하게 되었다. 이로써 조선은 19세기까지 표면적으로 청과의 사대 관계를 유지했다.
일본도 조선과 마찬가지로 대내적으로 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명과의 사대 관계를 성립시켜 왔다. 1403년 11월 명으로부터 책봉을 받음으로써 책봉체제 속에 편입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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