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회화사, 천리강산도 분석 및 북송 휘종의 중국 회화
- 최초 등록일
- 2022.06.08
- 최종 저작일
- 20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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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 왕조 말기에는 색조가 없거나 밝은 색상을 사용하고 전반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띠는 화풍이 유행하였다. 하지만, 푸른색과 비취색이 돋보이는 《천리강산도》는 이와 달리 화려한 색채감을 보여주는 북송 시기에 제작된 회화 그림이다.
《천리강산도》는 북송 1113년에 제작되었으며, 현재 북경 고궁박물원에서 소장하고 있다. 가로 길이가 약 12m에 달하는 긴 비단 두루마기에 화려한 채색기법을 이용하여 그려진 그림이다. 왕희맹이라는 젊은 화가가 황제를 위해 그린 청록산수화이다. 이 도판은 선이 확실해 선명한 느낌을 주며 압도적인 크기와 묘사로 인해 보는 이로 하여금 웅장함을 전달한다. 해당 그림을 분석하기 전에 앞서, 제작 시기와 작가에 대한 사전 지식의 필요성을 느껴 먼저 설명해보려고 한다.
먼저, 당시 북송은 960년부터 1127년까지를 일컬으며, 관료제를 정점으로 한 황제 중심의 지배 권력이 확립되고, 시장경제가 등장하는 등 이전 수, 당과는 엄격하게 다른 권력구조와 사회형태를 보이는 대변혁기였다. 그 시기 동안에는 중국의 역대 예술 중에서도 가장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다. 동양화 내지 중국화의 확고한 전통을 수립하였으며 궁정에 설치된 화원을 중심으로 황실의 비호 아래에서 발달하였다. 특징은 당이나 오대에 볼 수 있었던 약동하는 묘선에서 한 걸음 나아가 감정을 억제한 냉철하고도 정확한 선을 구사하기를 선호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이지적인 화풍을 만들어내며, 휘종의 《화조도》에서 여실하게 드러난다.
휘종(조길)은 북송의 8대 황제로, 황제에 즉위할 가능성이 적어 정치에 대한 교육보다는 미술이나 문학, 도가 사상에 심취하였다. 18세에 황제에 등극한 휘종은 부패가 발생하고 직권을 남용이 만연하는 등 정치면에서 뛰어난 실력을 갖추지 못했지만, 예술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휘종의 가장 큰 업적은 화원을 설치한 점이라고 꼽아볼 수 있는데, 휘종은 전통적인 회화 기교에 통달한 뛰어난 화가 집안의 사람이었다.
참고 자료
故宮博物院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한방임. (2007). 북송시대 화론서 『선화화보(宣和畵譜)』와 그 화론적 경향.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30(0), 213-238.
김재숙. (2013). 삼원법에 나타난 산수공간의 미학적 의미. 철학연구, 125(), 83-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