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는 617년(진평왕 39년)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에 해당하는 압량군 불지촌의 율곡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꽤 세력이 있는 집안으로 '인피공' 혹은 '적대공'이라 할아버지의 이름이 남겨져 있고 아버지의 이름은 '담내'라 전해진다. 성은 '설'(薛)이며 어렸을 적 이름은 '서당' 또는 '신당'이라고 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원효의 어머니가 밤나무 밑을 지나다 산기를 느껴 그 자리에서 원효를 낳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밤나무를 '사라수'라 부르며 밤나무에서 이후 주먹만한 밤이 열렸다고 한다. 원효는 출가후 그 터에 절을 지어 '사라사'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원효의 탄생설화는 여러 점에서 석가모니의 그것과 비슷한 모습을 띄고 있다.
원효는 언제쯤인지는 모르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라게 된다. 지방 명문가이던 할아버지 슬하에서 원효는 훗날 대장경과 중국의 고전을 자유자재로 독파하고 훌륭한 한문저술을 남기게 되는 기초실력을 키웠을 것이다.
원효는 스무 살 때 자기 집을 절로 삼고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됐다. 그 당시 신라는 정식으로 출가하는 체제가 서 있지 못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자기 집을 '초개사'라 하고 스스로 원효(元曉,으뜸가는 새벽)이라 이름을 붙이고 불교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러다 29살에 경주 황룡사에서 정식으로 출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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