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보 수필의 특성과 문학사적 의의
- 최초 등록일
- 2022.05.13
- 최종 저작일
- 20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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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규보 수필의 특성과 문학사적 의의
목차
1. 李奎報
2. 이규보의 수필
2.1. 갈래별 특징
2.1. 형식상 특징
2.3. 모순점
3. 문학사적 의의
4. 나오며
본문내용
백운거사 이규보는 고려시대 문인으로, 이규보가 태어난 2년 뒤 고려는 ‘무신란’으로 인해 혼란기를 맞는다. 타고난 감수성과 필력을 가진 그는 무신 정권 속에서 문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결코 유리할 리 없는 상황에서 20대 초반까지를 보낸다. 그의 글을 감상해보면 나도 모르게 눈치를 보게 되거나 통쾌하거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는 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특유의 발상을 하고, 또 그만의 방법으로 아주 대담하게 혹은 아찔하게 풀어내버린다. 그러나 글재주 좋은 문인 이규보는 무신정권이라는 벽 앞에서 좌절을 맛본다. 그는 22세에 급제하였으나 근 10년 동안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32세에 비로소 지방 관직을 발판으로 관계에 들어서게 되고 이후부터는 비교적 평탄한 관운을 이어가게 된다.
이규보(1168~1241)는 개인적인 초년의 불운을 딛고 오직 문학적 역량만을 입신의 무기로 내세웠다. 마침내 백운은 문학적 기량을 인정받고 당대에 이른바 계관시인과 같은 존재가 되어 문인으로서의 명성과 관료로서의 영예를 한 몸에 누렸을 뿐 아니라, 후대에도 동방의 문호라는 일컬음을 계속 받아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규보는 술과 문학과 정치를 잘 조화시킨 고려 최고의 문장가였으며 무신정권이 수립되고 권문세족이 무너지면서 신진 사류층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의 가계는 진취적인 기질을 형성하였고 이에 일생동안 무수한 시련과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특히 아홉 살 때부터 신동이라 불리었는데 그 자신도 문장으로 세간에 명성을 날리고 사회에 기여할 인물이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이에 많은 독서와 문재를 연마하여 문학을 통해 국가를 빛내고 자신도 출세를 도모하려는 문학 효용론을 그의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그는 시와 문에 능하여 수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그의 아들 함(涵)이 편집 간행한 「동국이상국집」에 그의 저술들이 망라되었고, 조선시대의 홍만종이 찬집한 「시화총림」에는..
<중 략>
참고 자료
장덕순, 『한국수필문학사』, 새문사, 1984
신용호, 『이규보의 의식세계와 문학론연구』, 국학자료원, 1990
권두환,「이규보의 문장」,『이규보연구』한국문학연구총서고전문학편3, 새문사, 1986
김진영, 「이규보 문학관의 몇 국면」,『이규보연구』한국문학연구총서고전문학편3, 새문사, 1986,Ⅰ-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