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케테무르를 중심으로 한 조선 초기 대외관계
- 최초 등록일
- 2022.03.16
- 최종 저작일
- 20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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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몽케테무르를 중심으로 한 조선 초기 대외관계"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몽케테무르의 일생과 당시 여진의 상황
3. 조선과 여진, 명과 여진의 관계
4. 여진을 중심으로 한 조선과 명의 관계
5. 나가며
참고문헌
본문내용
14세기 중반 세계를 호령하던 원이 몰락하고 명이 중원을 차지하였다. 같은 시기 한반도에서는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었다. 그러나 두 나라 사이에 존재하던 만주에서는 여진이 국가를 수립하지 못하고 부족 단위로 곳곳에 흩어져 거주하였다. 당대에는 현대와 달리 국경의 개념이 확실하지 않았다. 때문에, 당시 만주는 명과 조선 사이의 ‘변경’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고려 시절 동북면부터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중앙 정계에 들어올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여진 출신의 이지란 등이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명은 건국 이후 북원을 견제함과 동시에 요동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려 시도하였다. 이를 위해 요동도사를 설치하기도 했고 나아가 극동부에 누르간도사를 설치하여 양극단을 중심으로 요동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려 하였다. 여진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일부는 명의 간접 지배체제로 편입되기도 하였고, 일부는 조선의 변경민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또한, 조선과 명은 여진을 중심으로 한 갈등 관계를 겪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의 만주는 조선과 명에게 아주 중요한 지역이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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