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와 백제의 지역유적과 스토리텔링 - 서동의 출생설화의 연못, 궁남지 -
- 최초 등록일
- 2021.09.23
- 최종 저작일
- 20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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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부여와 백제의 지역유적과 스토리텔링 - 서동의 출생설화의 연못, 궁남지 -"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선화공주’가 백제 무왕
Ⅲ. 궁남지 백제 무왕의 출생 설화
Ⅳ. 서동의 근거 궁남지(宮南池)
Ⅴ. 삼국사기와 궁남지
Ⅵ. 중국의 신선사상과 백제의 왕궁 조원(造苑)
Ⅶ. 맺음말
Ⅷ. 참고 문헌
본문내용
‘서동‘ 하면 떠오르는 서동요, 그리고 선화공주.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백제의 서동왕자와 신라의 선화공주의 로맨스 설화는 궁남지와 연관이 깊다. 궁남지는 서동, 즉 무왕의 출생설화와 연관된 장소이기 때문이다. 반만년 역사상 가장 극적이고 화려한 인생을 살아간 삼국시대 백제왕국 제 30대 임금 무왕은 그만의 독특한 출생 설화와 선화공주와의 설화로 후세에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이야기는 드라마 ‘서동요’로 극화되어 시청자들의 관심과 이목을 끌기도 하였다. 이 드라마에서는 백제 무왕의 특이한 출생과 신분 성장 과정 국경을 넘은 사랑이야기와 백제 신라 양국의 궁중 이면사가 흥미 있게 그려졌었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로맨스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서동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동요
善化公主主隱(선화공주주은)/ 他密只嫁良置古(타밀지가량치고)
薯童房乙(서동방을)/ 夜矣卯乙抱遣去如(야의묘을포견거여)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정을 통해 두고/ 맛동(서동) 도련님을 / 밤에 몰래 안고 간다.
서동(薯童)은 백제 제 30대 무왕의 아명이다. 그는 도량이 비상하고 항상 서여(마)를 캐어 팔아서 생계로 삼고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그의 아명을 서동으로 불렀다. 서동은 어느 날 궁중으로부터 신라의 국정을 탐지하라는 밀명을 받고 마 장사꾼으로 위장하여 신라에 잠입하여 활동하였다. 그러다 그는 신라 진평왕의 셋째 공주 선화(善花)가 아름답기 짝이 없다는 소문을 듣고 더벅머리를 깎고는 서울로 올라왔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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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미디어센터 ‘선화공주와 서동의 사랑 이야기는 허구? - 미륵사지 건립주체에 관한 봉안기와 삼국유사의 서술 서로 달라’:
http://www.donggukin.org/news/articleView.html?idxno=236892
바람통신 – 궁남지: http://blog.daum.net/chanellee/13755850
백제여행 :http://www.photo260.com/gungnamji/gungnamji.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