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송 시기 대몽항쟁사
- 최초 등록일
- 2021.07.26
- 최종 저작일
- 20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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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남송 시기 대몽항쟁사"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금(金)의 멸망과 새로운 정국
1. 금 선종(宣宗)의 개봉(開封) 천도
2. 오고타이(高潤台, Ogotai) 칸의 즉위와 완완진화상(完顔陳和尙)의 활약
3. 채주(蔡州)로의 피난과 금(金)의 멸망
Ⅲ. 명장 맹공(孟珙)의 분투와 몽케(蒙哥) 칸의 죽음
1. 몽골 제국과의 첫 접전과 단평입락(端平入洛)
2. 오고타이(高潤台, Ogotai) 칸의 남송 정벌과 맹공(孟珙)의 활약
3. 남송의 사천성(四川省) 방어체계와 구유크(貴由, Guyuk) 칸의 즉위
4. 몽케(蒙哥) 칸의 즉위와 남송 정벌
5. 쿠빌라이(忽必烈, Khubilai)의 악주(鄂州) 포위전
Ⅳ. 가사도(賈似道)의 집권과 양양(襄陽) 공방전
1. 가사도(賈似道)의 집권과 쿠빌라이(忽必烈, Khubilai) 칸의 즉위
2. 쿠빌라이(忽必烈, Khubilai) 칸의 남송(南宋) 정벌 계획
3. 몽골 제국의 양양(襄陽) 포위와 남송(南宋)의 양양(襄陽) 지원
4. 번성(樊城)의 함락과 여문환(呂文煥)의 투항
Ⅴ. 맺음말
Ⅵ. 참고
본문내용
유라시아 대륙은 13세기에 접어들면서 초원지대에서 등장한 한 국가에 의해 급격한 소용돌이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바로 초원지대의 그저 그런 유목민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던 몽골족(蒙古族) 때문이다. 몽골족은 때마침 등장한 예수게이(也速該)와 테무친(鐵木眞)이라는 영웅의 등장으로 지금까지의 초원의 질서를 무너트리고 하나로 통합시켰다. 테무친은 1206년 오논(Onan) 강 근처에서 몽골족을 형성하는 주요 부족들의 족장이 모인 회합, 쿠릴타이(Khuriltai)를 소집해 몽골 제국(蒙古帝國)의 건국을 선포했다. 몽골 제국은 이후 사방으로 군사 활동을 시작하는데 가장 먼저 남쪽에 위치한 서하(西夏)를 시작으로 철천지원수였던 금(金), 테무친에게 패배한 나이만족(乃蠻族, Naiman)의 왕자 쿠츨루크(克出魯克, Kuchluk)가 장악한 서요(西遼, Karakitai) 등이 그 희생물이었다. 유라시아 대부분을 정복하는 대제국의 건설이 시작된 것이다. 몽골 제국의 군사력은 실로 대단했다. 유목민 특유의 기동력과 규율, 그리고 현지의 주민과 상인을 이용한 치밀한 정보수집에 기반을 둔 적응력은 상대방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그 덕분에 몽골 제국은 불패의 신화를 쌓아갈 수 있었다. 중동의 강자로 군림하면서 나라의 전성기를 누리던 호라즘 제국(Khwarezmian Empire)이 몽골 제국의 손에 철저하게 무너진 것이 그 단적인 예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몽골 제국의 군대는 13세기 중반에는 금나라에 쫓겨 강남(江南) 일대만을 차지하고 있던 남송(南宋)까지 당도했다. 하지만 이 중국 남부의 무력해 보이기만 하던 나라는 몽골 제국의 힘에 맞서 예상외의 강인함과 의지를 보여줬다. 남송과 몽골 제국 사이의 개전 시기는 1234년으로 이때부터 남송이 멸망하는 1279년까지, 남송은 그전까지 불패를 자랑하던 몽골 제국의 전진을 무려 45년씩이나 막아낸 것이다. 그렇기에 본문에서는 몽골 제국의 세계 정복에 있어 가장 중요한 대목, 즉 남송의 대몽항쟁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남송과 몽골 제국이 개전하게 되는 계기부터, 1230년대 맹공(孟珙) 및 1250년대 여문환(呂文煥)의 대몽항쟁 과정을 가능한 한 간단하게 서술하고자 한다.
참고 자료
『남송의 멸망과 양양 번성의 전투』, 이근명,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교수, 2002년 12월.
『아틀라스 중국사』, 박한제, 김병준, 이준갑 외 2명, 역자 변용익, 사계절, 2007년 7월 20일.
『칭기즈 칸과 몽골제국』, 전근완(글), 이동철(그림), 주니어김영사, 2010년 9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