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노해(朴勞解). 본명 박기평(朴基平). 박노해는 ‘노동자들의 해방‘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1957년 전라남도 함평군에서 출생하였으며, 그는 유년시절 판소리꾼이면서 민족독립운동과 진보운동에 참여한 아버지와 카톨릭 수녀가 되기를 원했던 어머니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7세의 어린나이에 아버지께서 타계하시고 일찍 찾아온 불행은 그를 독서와 글쓰기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훗날 그의 형은 카톨릭 사제가 되어<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대표를 맡고, 그의 여동생은 수녀가 되었다. 서울에서 교회의 서클활동과 야학 등에 참여하며 당시 지식인들의 급진적 자유주의와 민중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사회주의와의 만남을 통해 투쟁적 이데올로기에 접하게 되며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반독재 투쟁의 대열에 참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박노해는 급진적 성향을 띠며, 열악한 노동현실에 대한 폭로와 군부독재 정권에 맞선 투쟁의지를 보이며 노동자들의 노동 운동와 반민주 투쟁을 위한 선봉역할을 하게 된다. 종교인이 된 그의 형제들과 다르게 그는 16세에 상경하여 선린상업고등학교를 졸업 후 섬유·화학·금속·정비·운수 노동자로 일했다. 그러다 1984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출간하면서 등단하였고, ’얼굴없는 시인‘으로 불리면서 실천 노동자의 전범으로 떠올랐다.
이후 1985년 서울노동운동연합에서 중앙위원으로 활동하고, 1989년에는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의 결성을 주도하며 노동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그의 이러한 행보는 아버지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무덤을 끌어안고 “나는 부끄럽지 않은 당신의 아들로 역사의 한 가운데를 걸어나갈 것입니다. 당신처럼 불철저하게가 아니라 철저하게 걸어나갈 것입니다.”([이 땅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박노해)라고 맹세한 적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그가 훗날 노동자 시인에서 선진적 노동운동가, ’사회주의적 혁명가‘로 변모한 것이 이미 예정된 운명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참고자료
· 정상균, [한국현대시문학사]
· 류찬열, [현대 시인 연구]
· 박노해, [노동의 새벽]
· 임규찬, [박노해 최근 시의 성격과 변화에 대하여-『참된 시작』을 중심으로(1993)]
· 임철규, [평등한 푸르른 대지-박노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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