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예술 - 불이선란
- 최초 등록일
- 2021.07.03
- 최종 저작일
- 20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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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추사 김정희에 관한 일반론
1) 추사 김정희의 ‘불계공졸’
2) 스승 옹방강과 완원과의 우정
2. ‘감각 존재’로서의 <불이선란>
1) 감각 존재로서의 ‘획(劃)’
3, ‘괴(怪)’와 ‘졸(拙)’-새로운 감각 존재
4. 감각을 생성하는 ‘경주자’로서의 예술가는 어떤 자인가?
본문내용
추사 김정희의 <불이선란>은 담묵(淡墨)의 난엽에 화심(花心)만 농묵으로 강조한 매우 간결한 구도이다. 이 외의 다른 풀이나 돌, 대지를 그리지도 않았고, 구도상 오른쪽의 <산심일장란>에서 보이는 ‘봉의 눈’이나 ‘메뚜기 배’와도 같은 형상도 없다. 즉 일반적인 사군자에서의 난초도와는 다른 풍격의 그림인 것이다. 사군자화는 산수화나 인물화에 비하여 비교적 간단하고 서예의 기법을 적용시켜 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여가로 그림을 그리는 선비와 문인들에게는 가장 적절한 소재였다. 또한 서예의 필력 자체가 쓴 사람의 인품을 반영한다는 원리의 연장으로 북송 때부터 사군자화는 화가들의 인품 또는 성격 전체를 반영한다고 믿어졌다. 그래서 문인들 사이에 더욱 환영받는 소재가 되었다.
그림의 형태나 기법이 간단할수록 그 소재 자체에 부여하는 상징적 의미가 더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남송 말기부터 원대(元代) 초기에는 몽고족의 지배하에서 나라를 잃고도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은둔 생활을 한 문인들 사이에 무언의 저항 수단으로도 그려졌다. 유명한 예로는 원대 초기의 사대부 정사초(鄭思肖)의 난초이다. 흙 없이 난초 포기만을 그려 몽고족에게 국토를 빼앗긴 설움을 표현하였다.
그러나 완당(추사의 연경 시절 후의 호)은이 난초그림에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했다는 대만족을 느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그 희열을 화제로서 제시를 통해 남겼다.
“난초를 안 그린 지 스무 해인데/ 우연히 그렸더니 천연의 본성이 드러났네./
문 닫고서 찾고 찾고 또 찾은 곳/ 이게 바로 유마거사의 불이선이라네.“
완당 스스로 자화자찬의 화제를 쓰고, 여백에도 다른 화제를 쓴다.
“초서와 예서의 기자(奇字)의 법의로 그렸으니 세상 사람들이 어찌 이를 알아보며, 어찌 이를 좋아할 수 있으랴. 구경이 또 제하다.”
유홍준은 [완당평전]에서, 이러한 완당의 넘치는 희열을 표현하곤 했던 것이 그의 많은 적들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한다. 완당의 새로운 예술적 경지를 이해하거나 존경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매우 오만한 것으로 보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참고 자료
[노마디즘2] 이진경, 휴머니스트
[철학이란 무엇인가?] 들뢰즈/가타리 지음, 이정임, 윤정임 옮김, 현대미학사
<아이콘과 코드, 그림으로 읽는 동아시아 미학범주> 임태승, 미술문화, 2006
<추의 미학>, 로젠 크란츠, 나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