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국채보상운동 관련 유적의 보고서를 작성하시오.
- 최초 등록일
- 2021.06.24
- 최종 저작일
- 20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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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구의 국채보상운동 관련 유적의 보고서를 작성하시오."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광문사터와 국채보상운동기념비
2. 서상돈 고택
3. 서문시장
4. 진골목
Ⅲ. 결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일반적으로, 다른 나라가 한 나라를 점령하려고 할 때 정치, 경제, 군사 이 3가지를 가장 먼저 차지하려고 한다. 구한말, 우리나라를 통째로 집어삼키려던 일본 역시, 이 3가지를 행하기 위해 청일전쟁 때부터 우리나라에 차관을 주어 경제적인 예속을 시도하였고, 1904년 제1차 한일협약 이후 더욱 노골적이 되었다.
일본이 적극적인 차관을 제공함에 따라 1904∼1906년까지만 4번에 걸쳐 무려 1,150만 원의 차관이 도입되었다. 당시 이 상황을 심각하게 보는 애국지사들이 많았는데, 과거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에서 재무부에서 일을 하던 서상돈은 국민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1907년 2월, 광문사 사장 김광제와 함께 대한매일신보에 “국채 1천 3백만 원은 바로 우리 대한제국의 존망과 직결되는 것으로 갚지 못하면 나라가 망할 것인데, 국고로는 해결할 도리가 없으므로 2천만 인민들이 3개월 동안 흡연을 폐지하고 그 대금으로 국고를 갚아 국가의 위기를 구하자”고 발기 취지를 밝혔다.
참고 자료
주형일, 2019,「대구에서 발원한 국채보상운동의 사회문화적 전개양상과 함의」.
이진현, 2014,「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관한 연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Contents).
국채보상운동(http://www.gukchae.com).
대구광역시 중구 문화관광(https://www.jung.daegu.kr).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
월간독립기념관(https://www.i815.or.kr).
중앙일보(https://news.joi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