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윤의 생애와 업적 - <해동역사>를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21.06.21
- 최종 저작일
- 20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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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한치윤의 생애
Ⅲ. 해동역사
Ⅳ. 맺음말
Ⅴ. 참고문헌
본문내용
전통의 유지, 그리고 전통의 변화.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가 기묘한 공존을 이루었던 조선 후기. 이 가운데 변화의 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조선 후기 실학자를 탐구하고 싶었다. 특별히 한치윤을 선정한 이유는 단순하다. 정약용, 유득공 등 눈에 익은 실학자들 가운데 한치윤과 『해동역사』는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낯섦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본격적으로 본론을 작성하기에 앞서 한치윤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읽었는데, 한치윤이 『해동역사』 저술에 있어 고증학적인 방법을 중요시했다는 부분에서는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판타지 소설이라도, 역사적인 고증을 바탕으로 한 설정을 가진 이야기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동기에는 단순한 연구자 개인의 흥미와 선호가 반영되었다.
이제부터 풀어가야 할 물음은 ‘(1) 왜 한치윤은 『해동역사』를 저술했는가?’, ‘(2) 한치윤은 『해동역사』를 통해서 자신이 살았던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이다. 이에 대한 해답을 한치윤의 생애와 그의 저서 『해동역사』를 탐구함으로써 얻고자 한다.
나. 시대 배경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기점으로 조선 사회는 이전과 확연히 달라지며, 변화한다.
1) 성리학의 절대화와 실학의 대두
야만하다고 평하며 조선이 교화시켜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았던 왜와 북방 이민족의 침략, 그리고 삼전도에서의 굴욕적인 패배는 조선인들의 문화적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내기에 충분했다. 이후에 조선의 정치가이자 학자들의 사상적·학문적 경향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게 된다. 주류는 명나라가 멸망함으로써 화(華)의 계보를 조선이 잇고 있다며 ‘소중화’를 주장하는 강경한 성리학자들이었다. 반면 성리학이 조선 후기의 현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비판하는 학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비주류였지만 여러 실증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고, 기존의 경향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바로 실학자(實學子)들이다. 실학자들은 토지제도의 개혁과, 상공업 진흥, 기술 혁신을 통한 부국강병을 주장하였다.
참고 자료
조동걸·한영우·박찬승 역,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 상>, 창비, 1994, 343-361 (제 19장 한치윤, 한영우著)
한영우, 「해동역사(海東繹史)의 연구」, <한국학보> 11권 1호, 일지사, 1985
정성희, <실학, 조선의 르네상스를 열다>, 사우, 2018
정구복, 「조선 후기 사학사의 성격」, 한국사학사학보, 2007
이종동 저·조성을 역, <중국사학사>, 혜안,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