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헤르만 헤세의 불멸의 작품 『데미안』을 좀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리폿 입니다. 먼저, 『데미안』이 발표되고 독일 전반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을 때, 당시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의 반응을 알 수 있도록 토마스 만의 글을 발췌해 쓰고,1. 헤르만 헤세 연보(1877 ~ 1962)를 네이버와 구글과 예스 24와 제가 소장한 헤르만 헤세의 책 서너 권을 취합해서 썼습니다. 2. 헤르만 헤세의 주요 작품과 작품 세계를 쓰고, 그의 작품 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헤르만 헤세의 명언을 제가 소장한 책을 참고해서 썼습니다. 3. 데미안의 의미를 쓰고, 4. 데미안 이해하기를 썼습니다.
『데미안』을 더 잘 이해하려면 정신분석 개념을 알아두면 좋은데, 헤르만 헤세가 이 학문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 알기 위해 그가 1918년에 쓴 「예술가와 정신분석」 이란 글을 찾아 그 글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발췌해 썼습니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을 1917년 집필하기 시작해서 1919년 출간합니다.) 총 17p 입니다. 성의 있게 썼습니다. 『데미안』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으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목차
데미안 이해하기1. 헤르만 헤세 연보(1877 ~ 1962)
2. 헤르만 헤세의 주요 작품과 작품 세계
3. 데미안의 의미
4. 데미안 이해하기
1) 데미안의 탄생
2) 데미안을 이해하기 위한 개념
① 의식과 무의식, 에고와 참 나
② 무의식에 접근하는 통로인 꿈
③ 인격화하여 꿈에 등장하는 무의식
3) 에밀 싱클레어가 데미안에 이르는 길 - ‘개성화 과정’
본문내용
20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로 1877년 7월 2일 독일 남부 뷔르템베르크의 소도시 칼프에서 선교사 요하네스 헤세와 저명한 인도학자의 딸인 마리 군데르트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요하네스 헤세는 발틱계 독일인으로 인도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다가 귀국한 뒤, 유명한 인도학자인 헤르만 군데르트의 기독교 서적 출판협회 일을 도왔다. 헤세의 어머니 마리는 헤르만 군데르트의 딸로 인도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교육을 받고, 인도로 돌아가 그곳에서 영국인 선교사 찰스 아이젠버그와 결혼했다. 그와 사별한 후 32세에 요하네스 헤세와 재혼하여 헤르만 헤세를 낳았다.1881년 헤세는 아버지가 ‘바젤 선교단’의 교사로 가게 되어 가족이 스위스로 이주한다. 1883년에는 스위스 국적을 얻는다. 헤세는 이전에는 러시아 국적을 갖고 있었다. 1886년 가족이 다시 고향 칼프로 돌아온다. 헤세는 4세부터 9세까지, 한때 스위스의 바젤에서 지낸 것 외에는 대부분 칼프에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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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62년 8월 9일 스위스 몬타뇰라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오로지 자기실현의 길만을 걸었다. 그의 작품은 6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전 세계에서 1억 5천만 부가 넘게 팔렸다. 이로써 헤르만 헤세는 20세기에 가장 널리 읽힌 독일 작가가 되었다.
헤세의 대부분의 소설은 자신이 겪은 당시의 역사적 현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시대 자체를 자기 소설의 주제 또는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그는 한 사회와 함께 있는 ‘집단 인간’을 생각하지 않았고 반대로 ‘개인 인간’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헤세는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을 자전적으로 묘사했다. 그의 작품의 주인공들은 모두가 청소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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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은 작품 속에서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 두 강도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하는 등, 다른 차원에서 성경을 바라보게 한다. 작품을 통해 우리는 명백히 보이는 것들조차 “달리 볼 수도 있다, 그 점에 비판을 가할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얻는데 이는 비판적 인식의 첫걸음이다.
유명한 구절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에서 암호처럼 등장하는 아프락사스는 융이 그노시스파(영지주의 영지주의(Gnosticism) : 유대교 전통보다는 희랍 사상의 관점에서 기독교를 이해하려고 한 자들이다. 그들은 영과 정신은 선하고 육과 물질은 악하다는 극단적 이원론에 근거해 구dir의 창조주 하느님을 물질을 만든 저급한 신으로 보았다. 그들은 구약과 신약의 단절성을 과도하게 강조했고, 그리스도의 인성에 타격을 줄 만큼 신성을 강조했다. 선한 그리스도의 영이 악한 인간의 육을 입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를 꺼려해서 그들이 설명하는 기독론은 가현설(假現設)로 이해된다. 그리스도가 입은 육신은 그렇게 보일 뿐이지 실제로 인간의 육신을 입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육을 영의 감옥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영을 가두고 있는 육을 제어하고 영을 육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방법으로 과도한 금욕주의를 적용했다. 또 그들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비밀한 지식을 추구했고, 예수님을 그 지식을 매개하는 중재자로 생각했다. 구원의 방법으로서 지식을 중시하는 것은 영지주의에 희랍철학의 영향이 감지되는 부분이다. 영지주의는 결코 통일된 운동이 아니었으며, 지역과 지도자들에 따라서 다양한 양상을 띠는 종교적 혼합주의의 특징이 다분했다. 기독교 신학과 삶의 양태 안에는 항상 영지주의적 요소들이 완전히 배제되지 않았으며, 영과 육을 구별하는 금욕주의적 특징은 기독교인들의 삶의 방식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줬다
가현설(假現設) : 성육신하신 예수님께서 실제로 시공간적 한계에 묶인 육체와 인간성을 갖지 않았고, 단지 환영처럼 유령의 몸을 갖고 이 땅에 임하셨다고 가르치는 이단 사상. 이를 주장하는 자들은 예수님의 지상 사역 중에 인간적인 행위들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 가현설은 추월과 물질 세계를 선과 악의 대립 구조로 이해한 영지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주장되어온 것으로, 신적 존재인 예수님은 잠시 인간의 몸을 빌어 그 안에 거했을 뿐 본질적으로는 인간의 육신을 입지 않았고 따라서 죽지도 않았다고 한다. 사도 요한은 이런 이단적 주장을 엄히 경고했다.
) 철학자 바실리데스가 썼다고 주장하는 「죽은 자에 대한 일곱 가지 가르침 Ⅶ Sermonesad Mortuos」이라는 논문에 등장하는데, 융 심리학의 전반적인 개념과 아주 잘 들어맞는 개념이다.
아프락사스는 아브락사스 또는 아브라삭스로 쓰기도 한다. 처음에는 아브라삭스였는데 이후 그리스어 문자 시그마와 크시 사이에 혼동이 발생해 아브락사스라는 변형된 형태가 생겼다. 아프락사스는 영지주의의 주요 개념 중 하나로 “위대한 통치자”라 불렸다. 인간의 몸에 수탉의 머리를 갖고, 두 개의 다리는 뱀으로 이루어진 그노시스파의 신인 아프락사스는 오른손에는 방패를 왼손에는 채찍을 든 모습으로 부적 등에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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