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를 지킨 대수장가 간송 전형필
- 최초 등록일
- 2021.05.22
- 최종 저작일
- 20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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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의 미를 지킨 대수장가 간송 전형필"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백만장자 수집가의 탄생
Ⅲ. 전형필의 수집활동
Ⅳ. 민족의 혼과 얼이 담긴 훈민정음
Ⅴ. 그 외 활동
Ⅶ. 맺음말
참고 문헌
본문내용
전형필은 1906년 07월 29일 대한제국 한성부(현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서 정3품 전계훈의 손자로 참서관을 지낸 대부호 전명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증조 때부터 배우개(현 종로4가) 중심의 종로 일대의 상권을 장악한 10만 석 부호가의 집안이었으며 실로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전형필의 집은 99칸으로 100칸부터는 왕가의 영역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민간에서는 최고의 부자 집안 중 하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손 귀한 부잣집에서 태어난 전형필은 작은 아버지에게 입양되어 어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자랐다. 그러나 한 집에서 양부모, 양조부모까지 살았기 때문에 양육은 그대로 친부모가 맡았다고 한다. 그렇게 집에서 한학을 공부하던 전형필은 12살이 되던 해 어의동 보통학교(현 효제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된다. 한학과 신학문을 공부하며 어린 전형필은 세상에 대한 견문을 키워나간다. 시간이 지나 1921년 어의동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전형필은 휘문 고등보통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휘문 고등보통학교에서 전형필은 글공부 뿐만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게 된다. 야구에도 능했던 전형필은 휘문 고등보통학교에서 4학년 때 야구부 주장을 맡아 일본 원정에서 오사카 중학을 대파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 당시 축구 부장이었던 박정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초대 감독), 미술 부장 이마동(훗날 홍익대학교 미술 대학장 역임)과 함께 친하게 어울려 삼총사라고 불렸다고도 전해진다. 이 시절부터 전형필은 도서 수집을 취미로 가지고 있었다. 그의 수필 수서만록에서 당시 도서 수집에 대한 흥미와 열정을 엿볼 수 있다.휘문 고등보통학교에 진학 당시 만났던 은사 춘곡 고희동 선생은 전형필의 예술적 감각을 눈 여겨 보았고 훗날 전형필의 평생의 스승 위창 오세창 선생을 만나게 되는 징검다리가 된다. 이후 1926년 전형필은 휘문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다. 휘문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전형필은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참고 자료
이충렬 , 『간송 전형필』 김영사, 2021
최석조. 『조선의 백만장자 간송 전형필, 문화로 나라를 지키다!』 사계절. 2018
김민규. 『간송미술관에는 어떤 보물이 있을까? 』 토토북 2019
기타 출처
유튜브 KBS 역사저널 그 날 국보를 되찾다, 문화유산지킴이 간송 전형필
https://www.youtube.com/watch?v=Mg7okMiMrUQ
위키 백과, 전형필
https://ko.wikipedia.org/wiki/%EC%A0%84%ED%98%95%ED%95%84
나무위키, 전형필
https://namu.wiki/w/%EC%A0%84%ED%98%95%ED%95%84
간송 미술문화재단
http://kansong.org/kansong/biography_7/
EBS 지식채널e, 바보 같은 남자 전형필
https://www.youtube.com/watch?v=12UABh9SXD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