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와무라는 6.25의 전란 속에서도 간직하고 그 후 지금도 까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한 장도 흘려보내는 일이 없이 삼십이 매의 엽서를 가보처럼 고이 간직하였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아버지가 중학교 때 보내준 엽서였다.
아버지의 엽서 때문에 옮겨 다니면서 중학교에서의 최초의 반항이 일어났다.
입학식 날 식당에 들어가 앉았다. 그러나 얼른 식사가 시작되지는 않았다. 연대장의 훈화가 좀처럼 끝나질 않았다. 어찌된 셈인지 교장 선생을 연대장이라고 했다.
그 당시에는 중학교 이상은 학교 편성이 군대 편제와 마찬가지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연대장의 훈화가 끝나고 중대장의 훈화가 시작 되었다. 중대장의 훈화는 확실히 연대장의 훈화 보다 짧았다. 중대장이 끝나자 사감이 또 훈화를 시작하였다. 사감의 훈화는 금방 끝이 났다.
자료의 정보 및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해피캠퍼스는 보증하지 않으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자료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 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의 저작권침해 신고센터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해피캠퍼스는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가 만족하는 서비스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아래의 4가지 자료환불 조건을 꼭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파일오류
중복자료
저작권 없음
설명과 실제 내용 불일치
파일의 다운로드가 제대로 되지 않거나 파일형식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정상 작동하지 않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