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한국 교회의 사회계몽운동은 다양하게 일어났다. 3·1운동 이후 1920년대 공산주의 및 사회주의의 도전과 이광수의 기독교 비판과 같은 내·외부적인 여러 도전에 직면하면서 한국 교회는 존립과 성장을 위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사회적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전통적인 신앙의 계승과 한국교회의 부흥과 발전에 대한 사명감도 부여받은 시기였다. 그와 같은 시기에 다양한 사회 계몽 운동이 이 땅 가운데 일어나게 되었다.
절제운동. 1912년 평양, 황주 기타 각지에서 조직된 계연회와 같이 3·1운동 이전에도 사회계몽운동이 존재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것은 특정 지역에서 일어난 사회계몽활동이었다. 하지만 3·1운동 이후 일어난 운동은 민족의식에 눈을 뜬 한국의 의식 있는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하여 범교단적으로 전개된 운동이었다.
일본은 무력과 더불어 민중의 저항을 받자 술, 담배, 아편과 같은 퇴폐적인 문화를 활용하여 한국 민족을 정신적으로, 문화적으로 파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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