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은 일본의 전후-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 최초 등록일
- 2020.12.23
- 최종 저작일
-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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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아직 끝나지 않은 일본의 전후-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Ⅲ.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문제점
1. 최대 피해국의 제외
2. 전후 보상의 문제
1) 전후보상의 법적근거
⑴ 포츠담선언에서 나오는 보상
⑵ 일본 헌법에 나타나는 보상
⑶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의 배상
2) 배상의 실상
Ⅳ.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일본의 전후는 연합국의 일본에 대한 항복 권고이며, 전후 대일 처리방침을 명시한 포츠담 선언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고 ‘전 일본 군대의 무조건 항복’을 발표하였다. 이후 연합군의 대일점령이 개시되었고,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발효로 일본이 독립하면서 일본의 전후는 끝인 듯 보였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문제가 있으며, 일본의 전후 보상에도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그 문제점에 대해 알아보고, 전후 배상의 실상을 통해 실제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일본의 전후가 끝이 났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Ⅱ.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점령 점령기란, 1945년 8월 말부터 진행된 점령의 개시 이래 1952년 4월 28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발효로 일본이 독립할 때까지 6년 8개월에 걸친 기간을 말한다.
초기 맥아더는 장기 점령이 아니라 3년 정도의 단기 점령을 얘기하기도 했으나, 강화의 절차 문제를 둘러싼 이견이 미소 사이에 노정되면서 계속 연장되어 갔다. 대일 점령정책의 마지막 단계가 강화문제였듯이, 일본의 ‘과거극복’의 마지막 계기 또한 강화조약의 내실에 달려 있었다.
미국의 대일점령정책이 공산주의에 대한 방벽 구축이라는 방향으로 선회하면서, 형식적으로나마 유지되던 연합국의 공동 점령관리는 와해되었다. 대일점령의 종결, 즉 강화를 실현하는 방법이 문제가 되었다.
참고 자료
하종문,〈천황제, 도쿄재판,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 일본식 과거극복 과정의 세 계기〉,《아세아연구 통권 106호》,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2001
김명섭·김승배,〈20세기 "전후보상" 개념의 형성과 변용: 한국과 일본 간의 보상문제를 중심으로〉, 《한국과국제정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2009
일본의 전쟁 책임 자료센터,《세계의 전쟁 책임과 전후 보상》, 동북아역사재단, 2009
高木健一지음 ㆍ 최용기 옮김, 《전후보상의 논리》, 한울,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