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길준의 서유견문
서유견문은 조선말의 지식인이었던 유길준에 의해 집필된 계몽서이다. 조선의 계몽지식인으로서 유길준의 사상을 살피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다. 먼저 유길준은 1856년에 출생하여 조선이 강화도 조약을 통해 문호를 개방하고, 또한 조미수호통상조규 등 서양 열강들과의 조약을 맺기 시작하는 1870년대와 1880년대에 인생에서 가장 활발할 시기인 20대와 30대를 보냈다. 1870년대 이후의 시간은 오랜 기간 동안 조선을 지탱해 왔던 사대교린이라는 하나의 완결적인 세계관에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되는 시기였던 것이고, 이에 따라 혈기 왕성한 청년 유길준은 새롭게 등장하는 서양과 일본 그리고 청국과 조선의 정체성과 관계설정에 대해 끊임없이 사고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되었다. 그는 1870년대부터 박규수의 문하에서 김옥균, 박영효 등 개화청년들과 학문을 함께 배우면서 이러한 문제의식을 구체화 시켜 나갔다.
또한 그가 직접 근대 국가를 방문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직접 근대 문명을 경험하면서 자신이 가졌던 문제의식의 해결책을 구체화 할 기회를 얻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그는 1881년 신사유람단으로 일본을 방문해 후쿠자와 유키치가 설립한 게이오 의숙에 입학함으로서 한국 최초의 일본유학생이 되었고, 1883년도에는 보빙사의 수행원으로 따라가 현지에 남아 유학할 기회를 얻음으로서 한국 최초의 미국유학생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경력은 매우 특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1876년에 이르러서야 제한적으로 문호를 개발했던 조선의 국제관계에 있어서의 소극성과, 농업을 기반으로 했던 미약한 경제적 토대는 매우 제한적인 인물에게만 유학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다. 그는 한정적인 기회의 문을 뚫고 직접 근대국가를 방문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근대 국가와 국제관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대부분의 서양 사정의 유통은 중국과 일본을 통한 이차접근법에 의존해 있었는데, 이는 조선책략의 ‘聯美國’등의 내용에서도 드러나듯이 중국이나 일본의 대외인식이나 이해관계가 강하게 반영된 것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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