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 삼한의 위치 논쟁, 고려의 대몽항쟁, 발해와 관련된 생각
- 최초 등록일
- 2020.10.27
- 최종 저작일
- 20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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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사 / 삼한의 위치 논쟁, 고려의 대몽항쟁, 발해와 관련된 생각"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삼한의 위치 논쟁에 대한 비교서술 후 자신의 관점을 논리적으로 서술
2. 고려의 대몽항쟁에 대한 자신의 견해 제시
3. 발해와 관련하여 수업에서 강조한 내용을 요약
본문내용
I. 삼한의 위치 논쟁에 대한 비교서술후 자신의 관점을 논리적으로 서술
삼한의 위치에 대한 논쟁은 다양하다. 가장 큰 논쟁은 그 위치가 한반도였는지, 대륙이었는지를 논쟁하고있다. 먼저, 대륙 부근에 있었다는 주장은 사료를 통해 볼 수 있다. “대청일통지”, “만주원류고”, “한서”, “지리지” 등의 기록에는 요동과 남만주 광령 지방이 진한, 진조선이라고 표기 되어있다. 이에 신채호 선생의 당시 역사관을 보면 만주의 진한을 신조선이라고 칭했고, 마한을 말조선, 번한을 불조선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러한 사료를 통해 삼한이 대륙에 존재했다는 주장이 있고, 다른 주장은 삼한이 남긴 유적인 천문 관측 유적을 특징으로 삼한이 대륙에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진한의 조선 천문대가 중국 충칭에 있는 조선 천문대와 동일하다는 주장이다. 또한, 하얼빈 천문대와 졸본 지역 천문대를 예로 들 수 있다. 변한은 농사를 지으려 황하로 간 사람들이라는 주장도 있고, 마한은 초기에 막막한 북쪽이어서 막한이라고 불리웠다가 추후에 말이 많다는 의미의 마한이라고 불리웠다는 주장도 있다. 다른 주장은 조선시대 학자들이 중국의 기록을 막연하게 인용하며 중국기록을 무조건적으로 맹신하여 중국 삼한의 기록을 마치 한반도내에 있었던 것처럼 기술했던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반면에, 한반도내에 위치했다는 주장을 살펴보자면, 사기(史記) 조선전과 한서(漢書) 조선전에 의하면 BC 2세기경 까지도 한반도 중남부지역은 진국으로 기록되었으며, 진한 또는 삼한 모두가 이 진국으로부터 발전된 것으로 나와 있다. 삼한의 형성과정에는 토착집단의 점진적 발전 결과로 삼한이 등장하였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다른 고고학적 자료로 보았을 때, 한강유역을 경계로 남부지역이 특색 있는 문화를 형성하기 시작한 때는 청동기 시대이며, 토착집단이 한족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초기 철기시대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