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와 일제시대 감염병(인플루엔자)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20.08.16
- 최종 저작일
- 20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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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후기부터 일제시대의 인플루엔자에 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1798년 무오 인플루엔자와 조선
1) 인플루엔자의 피해 규모
2) 인플루엔자에 대한 대처
2. 1918년 인플루엔자 팬데믹과 식민지 조선
1) 120년 만의 인플루엔자 대유행
2) 피해 규모와 특성에 대한 입체적 검토
3) 3・1 민족민주혁명운동과 인플루엔자
본문내용
의사학자 패터슨(David Patterson)의 Pandemic Influenza, 1700-1900(1986)에 의하면, 1700년대에는 인플루엔자 팬데믹이 1729~1730년, 1732~1733년, 1761~1762년, 1781~1782년, 1788~1789년, 1799~1800년 등 적어도 여섯 차례 있었다. 하지만 패터슨을 비롯해서 1918년 팬데믹 이전의 인플루엔자 대유행을 연구한 사람들의 관심은 유럽과 아메리카에 머물렀다.
정조실록등 여러 자료에 의하면 1798년 11월(음력)께부터 대략 3개월에 걸쳐 인플루엔자가 중국과 조선에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고 나온다. 무오연행록에 의하면 연행사절단이 책문(柵門)을 거쳐 중국 땅에 들어간 11월 21일 무렵부터 사절단에 환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11월 21일 이전에 이미 조선에 인플루엔자가 발생했을 수도 있지만 뚜렷한 피해가 나타난 것은 그 이후로 생각된다.
이 ‘1798년 무오 인플루엔자’에 대해 정조대왕이 인플루엔자 역병의 위험을 뚜렷이 감지한 것은 12월 28일 홍낙성의 상소로 기곡대제의 친행(親行)을 중지시킨 때부터로 생각한다. 그리고 이틀뒤 홍낙성이 독감으로 사망함으로써 위기감은 더욱 높아져 관계 기관에 피해 상황파악과 대책 마련을 지시했을 것이다. 한편 목민심서에 따르면, 곡산부사 정약용은 그보다 한 달 전부터 역병으로 사망자가 늘어난 사실을 파악하여 “5일마다 사망자의 장부를 만들고 친척이 없는 자는 관에서 비용을 지급하여 매장하도록”했다.사암선생연보에 의하면, 정약용은 역병이 국경지역인 의주에서부터 번진 사실로부터 진원지가 중국이라고 판단했다.
정조실록 1799년 1월 13일자에 따르면 전국의 역병 사망자는 12만 8천명이었다. 국조보감에는 “안팎의 사망자를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고 기록되어 있다. ‘12만 8천명’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터무니없지도 않을 터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