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있는 과학자의 생애와 업적 리포트
- 최초 등록일
- 2020.08.09
- 최종 저작일
- 2020.04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관심있는 과학자의 생애와 업적 리포트"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장영실은 누구인가?
2. 장영실의 업적
(1) 천문기기의 제작
(2) 자동시보장치 자격루
(3) 활자주조
(4) 측우기
본문내용
내가 예전부터 관심 있던 과학자는 조선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이었다. 작년 3학년 2학기에 들었던 ‘공감과 소통’ 강의에서 ‘역사 인물들 중 4차 산업혁명시대 정치, 경제, 사회를 위해 부활시키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그 이유는?’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던 때가 있었는데, 그 때도 장영실을 주제로 발표를 준비해 갔을 만큼 관심이 있었다. 신분적 제한이 엄격했던 당시의 봉건적 사회에서 노비출신이었던 장영실이 과학기술과 응용에 탁월하여 놀랄만한 기계를 만들어 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 장영실은 누구인가?
앞서 말했듯이 장영실은 조선조의 과학자로서 본관은 아산이다. 기생의 소생으로 태어난 장영실은 경상도 동래현의 관노 출신이라고 전해지는데 그 때문인지 정확한 출생일수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는 어렸을 적부터 아주 치밀한 두뇌의 소유자라고 전해진다. 사물에의 관찰력 또한 뛰어났으며, 기계의 원리 파악에 남다른 재주가 있었고, 기계 등을 만들고 고치는 일에 능통했으며, 무기나 농기구를 제작하고 수리하는 등 금속을 다루는 일에 능숙했다고 한다. 장영실은 비록 관노 출신이었으나 그는 탁월한 재능을 어려서부터 발휘하여 주위로부터 인정받았고, 한양의 조정에까지 알려지게 되어 세종의 부왕인 태종 때 발탁되어 궁중에서 일하게 되었다. 장영실이 관직에 오르게 된 것은 태종 때가 아닌 세종 때였다. 세종은 제련 및 축성, 무기, 농기구의 수리에 뛰어난 장영실을 가까이 두어 자신이 반드시 이루고자 했던 사업 중의 하나인 천문의기 제작 사업을 비롯한 과학진흥사업에 참여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엄격한 신분제가 행해지던 당시에 노비출신인 자를 궁중에 두어 관리로 중용케 한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었기에 모든 문무 대신들의 반대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세종은 장영실과 같은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대신들을 설득하여 결국 장영실을 채용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